비 냄새의 정체

식물이 뿌린 '철벽 방어용' 향수

by 김경훈

누구나 한 번쯤 바싹 마른 땅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올라오는 그 특유의 싱그러운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를 '비 냄새'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 냄새에는 '페트리코(Petrichor)'라는 근사한 이름이 붙어 있다.

이번 지식 메뉴는 코끝을 스치는 찰나의 향기 속에 숨겨진 식물들의 치열한 생존 전략과 과학적 메커니즘을 차려보았다.



돌의 피, 혹은 식물의 이기적인 향기


'페트리코'라는 단어는 1964년 호주의 과학자 이사벨 베어와 리처드 토머스가 처음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스어로 '돌'을 뜻하는 페트라(Petra)와 신들의 혈관에 흐르는 영험한 피를 뜻하는 이코(Ichor)가 합쳐진 말이다.

즉, '돌의 피'라는 뜻이다.


이 낭만적인 이름의 실체는 사실 식물의 '방어 기제'에서 비롯되었다.

가뭄이 이어지는 건기 동안 식물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토양에 특정 지방산을 분비한다.

이 물질은 주변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여, 귀한 물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식물만의 화학전 결과물이다.

비가 내리면 바위나 흙 틈새에 농축되어 있던 이 기름 성분이 공기 중으로 피어오르며 우리가 맡는 그 독특한 향기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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