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불가능한 서점의 정보철학

by 김경훈

대구캠퍼스 인근에는 기묘한 중고 서점이 있다.

주인장인 '공 선생'은 인덱싱의 파괴자다.

그는 시를 경제학 서가에 꽂아두고, 요리책을 종교 서적 사이에 매립한다.

'인식적 정의'를 외치는 나에게 그의 서점은 그 자체로 거대한 화두(話頭)다.

화두란 선 불교에서 논리의 한계를 부수기 위해 던지는 역설적인 문장이다.

얼핏 들으면 터무니없지만, 경직된 흑백 논리의 시스템에 블루스크린을 띄워 정신을 일깨우는 '브레인 해킹'과 같다.


서점에 들어서면 공 선생은 차를 따르며 대뜸 묻는다.

"박수 소리는 두 손이 마주쳐야 난다는데, 한 손이 내는 소리는 무엇인가?" 나는 잠시 하네스 가죽을 쥔 손에 힘을 준다.

점자가 느리고 스크린리더의 기계음에 의존하는 나에게 '한 손의 소리'는 낯설지 않다.

남들이 눈으로 텍스트를 읽는 '양손의 박수'를 칠 때, 나는 소리라는 한 손만으로 세상의 의미를 낚아채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소리는 침묵과 마찰하여 존재의 화음을 만든다.

그것은 논리 너머의 감각이다.


공 선생의 서가에는 "흰 눈이 녹을 때 흰색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문구가 적힌 낡은 책자가 있다.

이것은 시각장애인 연구자인 나에게 꽤나 지독한 블랙코미디다.

나에게 흰색은 시각적 데이터가 아니라 '차가움'과 '사라짐'의 메타데이터로 존재한다.

데이터가 삭제되었다고 해서 그 정보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눈이 녹아 물이 되듯, 나의 시각 정보는 청각과 촉각으로 형태를 바꿔 내 장부의 흑자를 기록한다.

삼각형이 원을 볼 때 그것을 하나의 화두로 여기듯, 세상은 나의 보행을 화두로 보지만 나는 그저 다른 궤도를 달리고 있을 뿐이다.


미란다 프리커의 '인식적 부정의'를 연구하다 보면 "나는 내 의견에 동의하는가?"라는 화두가 가장 뼈아프게 다가온다.

세상이 나를 '증언적 부정의'의 틀에 가두고 내 지식의 가치를 폄하할 때, 나조차 그 편견에 동의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하게 된다.

"자유를 구하라.

그러면 욕망의 노예가 될 것이다.

규율을 구하라.

그러면 자유를 찾으리라."라는 문장은 나의 박사 과정 생활을 관통한다.

스크린리더의 속사포 랩을 견뎌야 하는 엄격한 규율 속에서만, 나는 비로소 정보의 늪을 탈출하는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공 선생은 가끔 내 옆에 앉아 있는 탱고에게 밀키 개껌 뼈다귀 한 개를 내밀며 묻는다.

"북극의 북쪽에는 무엇이 있는가?"

탱고는 대답 대신 꼬리로 바닥을 '탁' 친다.

녀석에게 북극의 북쪽은 중요하지 않다.

녀석의 우주에는 오직 '지금 여기'의 뼈다귀 냄새와 형의 하네스에서 전해지는 신뢰만이 존재한다.

"정적의 소리를 들어라"라는 화두를 탱고는 온몸으로 실천한다.

녀석이 하네스를 통해 전하는 그 고요한 텐션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 명확한 정답이다.


화두는 고통스럽다.

그것은 우리가 믿어온 이분법적 시스템을 강제로 종료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통 끝에 "네게 없는 것을 네가 갖고 있는 것 가운데서 찾으라"라는 진리를 만난다.

나는 시각을 잃었으나 소리로 세상을 읽는 법을 얻었고, 지팡이를 놓았으나 탱고라는 유기적 지능과 연결되었다.

공 선생의 엉망진창인 서가처럼, 내 인생의 데이터들도 기존의 분류법으로는 정의할 수 없다.

나는 오늘도 '분류 불가능'이라는 이름의 가장 완벽한 서가에 나 자신을 인덱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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