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늦봄은 화창하다.
문헌정보학을 연구하며 정보 리터러시의 본질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평등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풀기 어려운 화두였다.
흔히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겉으로 보기에 공정하고 단정하다.
그러나 장애 당사자로서 이 말은 종종 가장 불공정한 선언으로 들린다.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과 그 문 앞까지 도달할 수 있는 조건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기회의 개방이 아닌 조건의 재구성
법과 제도는 대개 장애인을 배려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장애인은 언제나 출발선에 늦게 도착한다.
누군가는 이미 운동장 안에서 경기를 시작했지만, 누군가는 경기장 입구의 계단 앞에서 도움을 기다린다.
사회는 이들에게 같은 규칙으로 뛰라고 말한다.
이것은 평등이 아니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회의 개방이 아니라, 그 기회에 실제로 닿을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의 재구성이다.
이것을 조건의 평등이라 부르고자 한다.
조건의 평등은 모두에게 똑같은 문장을 선언하는 일이 아니다.
누구는 손으로 열고, 누구는 버튼으로 열며, 누구는 음성으로 열 수 있도록 문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같은 시험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감각과 이동, 소통의 조건을 함께 보장하는 작업이다.
디지털 사회에서의 단단한 닫힘
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며 경사로나 자막, 보조기기 지원을 요구하면 종종 특별대우를 바라는 시선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더 많은 몫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요구하는 행위이다.
접근성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참여의 전제이며 시민권의 구체적인 형태이다.
장애인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신체적 손상 그 자체가 아니라, 손상을 기준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사회의 구조이다.
디지털 접근성 문제에서 이 점은 더욱 절실하게 드러난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인공지능 서비스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그 열림은 종종 가장 단단한 닫힘의 다른 이름이다.
화면은 작고 광고는 갑자기 튀어나오며 인증 절차는 복잡하다.
비장애인에게 몇 초면 끝날 일이 장애인에게는 포기와 좌절의 경험이 된다.
기술은 포용이 아니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을 뒤에 남겨두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존엄을 결정하는 사소한 조건들
조건의 평등은 기술의 문제이자 정의의 문제이다.
접근성이 시장에만 맡겨질 때 장애인은 더욱 배제된다.
누군가에게 계단 하나는 단지 구조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루 전체를 가로막는 벽이 된다.
그 벽을 없애는 일은 친절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기반 시설의 확충이다.
비장애인과 똑같아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몸 때문에 권리가 축소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평등은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에서 판가름 난다.
버스를 탈 수 있는지, 병원에 갈 수 있는지, 스마트폰을 쓸 수 있는지와 같은 삶의 세부 사항이 존엄을 결정한다.
손이 닿는 위치의 버튼 하나, 알아들을 수 있는 방송 하나가 사람을 사회 안에 남게 하기도 하고 밖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진정한 평등은 자신의 삶을 남에게 해명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이다.
도움을 요청할 때 미안해하지 않고, 접근권을 요구할 때 예외 취급받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평등은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