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의 패스트트랙은 자본주의 사회의 딜레마를 가장 단순하고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치다.
돈을 더 내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그 편리함 뒤에는 짜릿한 우월감과 함께 묵직한 질문이 따라온다.
과연 이것이 공정한가.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이 질문을 삶의 전 영역에 던진다.
시장이 경제 시스템을 넘어 인간의 관계와 공동체의 윤리마저 가격표로 환산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인가.
샌델은 우리가 시장 경제를 활용하는 사회를 넘어, 삶의 원리 자체가 시장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시장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돈이 없으면 기다림조차 허용되지 않는 시대다.
더 나은 의료, 더 빠른 법률 절차, 더 정교한 교육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돈이 없으면 아예 그 문 앞에도 갈 수 없는 시대다.
학술정보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두 명의 대학원생이 같은 주제를 연구한다고 하자.
한 명은 무료로 제공되는 오픈 액세스 논문과 제한된 도서관 자원에 의존해야 하고, 다른 한 명은 고가의 유료 데이터베이스와 상용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의 출발선은 이미 다르다.
돈은 정보 접근의 조건이 되고, 정보는 학문적 성취의 핵심 자원이 되며, 결국 성과는 자본의 힘에 따라 달라진다.
샌델은 이 상황에서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하나는 공정성이다.
돈이 경쟁의 규칙을 바꿔버릴 때, 능력이나 노력은 점점 덜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다른 하나는 부패이다.
본래 비상업적인 가치, 예를 들어 지식의 자율성과 공공성, 배움의 의미 자체가 왜곡되거나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는 정보의 가치가 아니라, 구매력의 크기만이 작동하는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현실은 정보 접근에 있어 추가적인 장벽을 마주하는 시각장애인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접근 가능한 형식의 자료가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정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이 필수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종종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비장애인이 일반 줄에 선다면, 돈 있는 사람은 익스프레스 줄을 선다.
시각장애인은 아예 줄에 설 기회를 얻지 못하고, 줄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기 어렵다.
정보 접근성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정의의 문제이며, 민주주의의 조건이다.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곧 교육과 직업, 복지, 시민 참여로부터 배제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 격차는 단순한 기술적 불균형이 아니라, 제도와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돈으로 정보의 문을 열 수 있다면, 우리는 결국 지식의 사유화를 통해 공동체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셈이다.
사회계약이란 우리가 동등한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기회와 존엄을 보장받는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돈이 모든 가치의 최종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는 이 계약은 형식에 불과해진다.
샌델의 질문은 날카롭다.
우리는 과연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하는가.
아니면,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전제 위에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가.
정보 접근의 조건이 공정성과 정의를 훼손하고 있다면, 그것은 기술이나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