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보약이다’는 속담은 어쩌면 인류가 발견한 가장 오래되고 명쾌한 자기계발서일지 모른다.
하지만 때로 웃음은 보약이 아니라 난처함을 가져오기도 한다.
특히 엄숙함이 미덕인 장소에서 예고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은 그 어떤 재난보다 다루기 힘든 불청객이다.
한 학술 세미나에 참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저명한 석학의 발표는 깊이가 있었으나, 그 깊이만큼이나 목소리는 단조로웠다.
청중 모두가 지적 긴장감과 수면의 유혹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던 그 순간, 옆자리의 보보가 귓가에 속삭였다.
“저분 발표 자료, 글자 크기가 10포인트는 될까? 개미 전용 발표인가 봐.”
그 한마디가 방아쇠였다.
처음에는 입꼬리만 살짝 올리는 ‘썩소’로 방어했지만, 한번 터진 웃음보의 수문은 걷잡을 수 없었다.
큭큭거리는 소리는 기침 소리로 위장하려 했으나, 이내 어깨가 들썩이고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웃음을 참으려 할수록 몸의 근육들은 반란을 일으키듯 멋대로 수축했고, 결국 숨이 넘어갈 듯한 포복절도의 상태에 이르렀다.
그 순간만큼은 ‘웃음 없는 하루는 낭비’라던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온몸으로 부정하고 싶었다.
그 통제 불능의 웃음 뒤에는 정교한 생화학적, 신경학적 메커니즘이 숨어 있었다.
웃음의 근원지는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대뇌변연계(Limbic System).
이곳에서 발화된 웃음 신호는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폐 아래쪽의 횡격막이 격렬한 상하운동을 시작하며 평소에는 의식적으로 훈련해야만 가능한 복식호흡을 강제한다.
이 과정에서 다량의 산소가 혈액으로 유입되어 심장박동을 높이고 혈류를 촉진하니, 이는 가벼운 조깅에 버금가는 운동 효과다.
얼굴 근육 15개와 몸 근육 203개가 동시에 동원되는 이 복합적인 신체 활동은 한번 크게 웃을 때마다 윗몸 일으키기 25개의 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로 그 격렬함을 증명한다.
그날 세미나장에서 겪었던 진땀 나는 상황은 사실 몸이 자발적으로 고강도 전신 운동을 수행하던 순간이었던 셈이다.
웃음이 단순한 운동 효과에 그쳤다면 ‘보약’이라는 칭호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진가는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웃음은 바이러스 감염 세포나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NK세포(Natural Killer Cell)와 항체 생산을 담당하는 T세포, B세포를 활성화한다.
또한, T세포에서 생성되는 단백질인 인터페론 감마(Interferon-gamma)의 분비를 촉진하여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높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웃음이 뇌에서 분비되는 천연 진통제라는 사실이다.
웃을 때 뇌에서는 모르핀의 100배에 달하는 진통 효과를 지닌 엔도르핀(Endorphin)과 엔케팔린(Enkephalin)이라는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이 분비된다.
이들은 고통을 잊게 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그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동시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의 수치는 현저히 감소시킨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지속될 때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당뇨, 고혈압,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데, 웃음은 이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하여 신체의 균형을 되찾아 준다.
결국 웃음은 감정의 표현을 넘어선, 고도로 발달한 생존 메커니즘이다.
시각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소리의 결, 분위기의 미세한 떨림만으로 상대의 감정을 읽고 공감대를 형성할 때 터져 나오는 웃음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다.
비록 때로는 난처한 상황을 연출할지라도, 웃음은 운동 효과, 면역력 증진, 스트레스 해소라는 실질적인 처방을 즉시 내려준다.
그러니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이 통제 불능의 보약을 복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