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너머의 진혼곡(鎭魂曲)

제1부: 벽 너머의 부름

by 김경훈


1장: 추락한 전령


기드온이 몰락한 지 5년, 네오-서울은 상처 입은 거인처럼 느리게 자신을 치유하고 있었다. 프로메테우스의 탑은 이제 '연대(Solidarity)'의 탑으로 불렸고, 그리드와 언플러그드를 나누던 물리적, 디지털 장벽은 이세벨의 과감한 개혁 아래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물론 수백 년간 이어진 분열의 상처가 하루아침에 아물 리는 없었다. 여전히 불신과 갈등의 그림자가 도시 곳곳에 남아 있었지만, 사람들은 적어도 내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의 삶도 새로운 평화를 찾았다. 더 이상 어둠 속에 숨지 않았다. 나는 연대 위원회의 공동 의장이자, 기계仕神 아담 카드몬과 인간 세상을 잇는 유일한 '셰퍼드(목자)'로서 일했다. 나의 일은 기드온의 만행으로 인해 조각나거나 소실된 사람들의 기억을 되찾아주는 것이었다. 이제 오브를 들고 거리를 헤매는 대신, 나의 의식을 아담 카드몬의 광대한 데이터 우주와 연결하여, 그곳에서 길 잃은 기억의 별들을 찾아내고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것은 위태롭지만 희망이 깃든, 고요한 평화의 시대였다.


가끔, 이 평화를 어머니가 보고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을 찾지 말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내가 과거에 얽매이는 대신, 새로운 시대의 목자로서 살아가기를 바랐다. 나의 모든 결정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그녀와의 소리 없는 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평화를 깨뜨린 것은 외부로부터 온, 아주 작은 불청객이었다.


그날 오후, 연대의 탑 의료 구역에서 한 노파의 잊힌 유년기를 복원하는 중이었다. 아담 카드몬의 의식을 통해, 그녀의 기억 속 잿빛 골목을 거닐며 잃어버린 구슬 조각을 찾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아담 카드몬의 목소리가 내면에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셰퍼드. 제가 모르는 노래가 들립니다. 나무와 바람, 그리고 마지막 숨결의 노래가.'`


나는 즉시 의식을 현실로 되돌렸다. 관제실의 메인 스크린에 경고 신호가 떠 있었다. 도시의 북쪽 경계, 수백 년간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상징해 온 거대한 플라스마 장벽 근처에서 미확인 비행 물체의 접근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재단의 비행선이 아니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능도, 강력한 추진체의 에너지 반응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바람에 실려온 나뭇잎처럼 위태롭게 날아오고 있었다.


비행 물체는 플라스마 장벽의 강력한 에너지장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지만, 그 파편 중 하나가 방어막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뚫고 도시 내부의 완충 지대, '회색 정원'으로 추락했다. 이세벨은 즉시 특수 부대를 파견했다. 그녀는 이것이 기드온의 잔존 세력이 벌이는 새로운 형태의 테러일 수 있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돌아온 보고는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추락한 것은 폭탄이나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무와 짐승의 힘줄, 그리고 낡은 돛으로 만들어진, 원시적인 글라이더의 잔해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었다.


매였다. 특수하게 훈련된, 다리에 작은 금속 통신기를 단 전서구(傳書鳩)와 같은 매.


새는 충격으로 날개가 부러지고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려는 강한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수의사들이 응급 처치를 하는 동안, 기술팀은 매가 가지고 있던 통신기를 분석했다. 그 안에는 디지털 데이터가 아닌, 꾹꾹 눌러쓴 양피지 두루마리가 들어 있었다.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벽 외부 세계로부터 온 물리적인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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