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냄새가 났더라면

by 김경훈


간만에 오늘의 주인공, 탱고다.

녀석은 한때 TV 광팬이었다.

녀석의 최애 프로그램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아프리카 편.

그중에서도 하이에나나 독수리가 사체를 뜯는 장면에 유독 격렬하게 반응했다.

(아마도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집에 TV가 없어져 녀석의 소소한 행복 하나가 사라졌지만, 스마트폰에서 ‘먹방’ 소리만 들려도 귀를 쫑긋 세운다.

녀석의 뇌는 ‘무언가를 씹거나 뜯는 소리’라는 청각 데이터(Auditory Data)에 완벽하게 고전적 조건화(Classical Conditioning)되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끔찍하고도 철학적인 질문이 시작된다.

만약 TV 기술이 극도로 발전하여, 다중감각 인터페이스(Multimodal Interface)를 탑재했다면? 즉, 시각과 청각뿐만 아니라, ‘냄새’까지 전송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냄새에도 ‘음소거’ 기능이 있었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없었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탱고는 아마 스크린 속 하이에나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TV 앞에서 침을 줄줄 흘리고, 화면을 핥아대며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냥 중’이라는 몰입형 경험(Immersive Experience)에 빠져, 안내견으로서의 본분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TV를 물어뜯어 그 안의 사자를 꺼내려했을지도 모른다.


TV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인류의 축복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의 뇌가 감각 과부하(Sensory Overload)에 빠지지 않도록 감각 채널을 의도적으로 분리해 둔, 가장 현명한 정보 설계(Information Architecture)의 결과다.

모든 감각을 한꺼번에 때려 넣는 것이 항상 좋은 경험(UX)은 아니라는 진실. 그것을 탱고의 순수한 식탐이 증명하고 있다.



비하인드 스토리


넷플릭스에서 '아프리카' 다큐멘터리를 화면해설과 함께 보고 있었다.

화면낭독기가 덤덤하게 텍스트를 읽어주었다.

“하이에나가 얼룩말의… 내장을… 먹고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발밑에서 자고 있던 탱고가 갑자기 ‘낑’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

녀석은 ‘하이에나’와 ‘얼룩말’이라는 맥락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오직 ‘먹는다’라는 핵심 키워드만 정확히 포착해 낸 것이다.

녀석에게 다큐멘터리는 교양이 아니라, 그냥 ‘오늘의 저녁 메뉴 레시피’였던 것이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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