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북대 동문 '색계' 찜닭

by 김경훈

대구의 여름은 유난히 뜨겁고, 겨울바람은 분지 특유의 묵직함으로 내려앉는다. 2018년, 내가 다시 이 도시에 발을 디뎠을 때 느꼈던 그 낯선 공기의 무게를 기억한다. 당시 내 곁에는 아직 탱고가 없었고, 나는 흰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캠퍼스의 소음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해가 흘렀고, 이제 내 왼쪽 손에는 지팡이 대신 든든한 파트너 탱고의 하네스가 쥐여 있다. 우리는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가며 수많은 문턱을 넘는다. 하지만 점심시간, 허기가 몰려올 때마다 마주하는 식당의 문턱은 여전히 물리적 높이보다 심리적 높이가 더 높게 느껴지곤 한다.


"강아지는 안 돼요."


그 말은 익숙하지만, 결코 무뎌지지 않는 거절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험 대신 안식을 택한다. 경북대 동문을 나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닿는 곳. 닭 냄새보다 사람 냄새가 먼저 마중 나오는 곳, 찜닭 전문점 '색계'로 향하는 길이다.



[대체 텍스트 : 시각 없는 사진 1 - 식당 입구]

소리: 낡았지만 잘 관리된 문이 '딸랑' 하고 부드럽게 열리는 소리.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와글와글한 학생들의 대화 소리와 달그락거리는 식기 부딪치는 소음.

냄새: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달큰하고 매콤한 간장 졸인 냄새. 습기를 머금은 밥 냄새가 차가운 바깥공기와 섞이며 만드는 포근한 경계선.

온도: 선글라스에 김이 서릴 만큼 확연히 따뜻해진 공기.



"어서 오세요! 아이고, 우리 탱고도 왔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장님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다. 그 목소리에는 '손님을 받는다'는 의례적인 친절함을 넘어, '아는 사람이 왔다'는 반가움이 묻어있다. 나는 탱고의 하네스를 잡은 손에 힘을 살짝 뺀다. 이곳은 긴장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우리가 테이블 근처로 다가가면, 어김없이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자, 여기 탱고 자리."

사장님은 나와 동행인이 앉을 의자 외에, 또 하나의 의자를 슥 빼내어 공간을 만드신다. 보통의 식당이라면 안내견은 테이블 밑 좁은 공간에 몸을 구겨 넣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탱고는 당당한 손님으로서 혹은 나의 동반자로서 자신의 공간을 배정받는다.


나는 자리에 앉기 전 습관처럼 발끝으로 바닥을 쓱 훑어본다. 끈적임 하나 없이 뽀득거리는 감촉. 식당 바닥이 깨끗하지 않으면 탱고를 엎드려 있게 하기가 늘 미안해지는데, 이곳의 바닥은 언제나 정갈하다. 이 청결함은 보이지 않는 손님을 위한, 그리고 그 손님의 눈이 되어주는 개를 위한 가장 조용한 배려다.


"사장님, 오늘은 까만 거 순살로 주세요. 치즈 많이요."


주문은 간결하다. 매운맛이 사무칠 땐 '빨간 찜닭'을, 짭조름한 감칠맛으로 위로받고 싶을 땐 '까만 찜닭(간장)'을 택한다. 물론 치즈 추가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주문이 들어가면 주방에서는 웍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름 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대체 텍스트 : 시각 없는 사진 2 - 테이블 세팅]

촉각: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놓이는 스테인리스 물통의 차가운 냉기. 그 옆에 사장님이 슬그머니 밀어 넣어주시는 바스락거리는 비닐 위생장갑 두 장과 묵직한 포크의 질감.

소리: 건너편 테이블에서 "와, 치즈 봐라!" 하고 탄성을 지르는 학생들의 목소리. 주방에서 압력밥솥의 증기가 '치이익' 하고 빠져나가는 소리.



기다림 끝에 찜닭이 나온다. 거대한 접시가 테이블에 안착할 때 느껴지는 묵직한 진동. 코끝을 맹렬하게 자극하는 캡사이신의 알싸함과 간장의 달콤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감싸는 모짜렐라 치즈의 고소한 향기가 뒤섞인다.


이곳의 찜닭은 뼈를 발라낼 필요가 없는 순살, 그것도 퍽퍽한 가슴살이 아닌 쫄깃한 다리살로만 이루어져 있다. 나는 사장님이 챙겨주신 포크를 든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초반전에는 포크가 제격이다. 치즈를 듬뿍 감은 고기를 찍어 올리면, 손끝으로 치즈의 탄력이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전해진다.


입안에 넣으면 뜨거운 열기와 함께 부드러운 살코기가 혀 위에서 녹아내린다. 대구에 와서 수많은 음식을 먹었다. 막창, 뭉티기, 치킨... 하지만 내게 '대구의 맛'을 정의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찜닭을 꼽겠다. 그것은 단순히 혀끝의 미각 때문만은 아니다.


고기가 먹기 좋은 온도로 식을 때쯤,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비장의 무기를 꺼낸다. 사장님이 미리 챙겨주신 위생장갑이다. 왼손에 장갑을 끼고 닭고기를 집어 든다. 시각장애인에게 식사는 때로 전투다. 젓가락질이 서툴러서가 아니라, 접시 위의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데 에너지가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을 사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고기의 모양, 당면의 미끄러움, 감자의 포슬포슬함을 직접 느끼며 입으로 가져간다. 시각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촉각과 미각이 결합할 때, 맛의 해상도는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이것은 나만의 '스피드 업' 구간이자, 오감으로 즐기는 미식의 절정이다.


배가 조금 덜 차오른 날엔 '닭칼국수'를 곁들인다. 닭 반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칼국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요리다. 걸쭉한 국물을 들이키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끈함이 온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무한리필이 되는 밥을 양념에 비벼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비우고 나면, 탱고가 식탁 아래서 "이제 갈 거야?" 하는 듯 몸을 턴다. 귀가 부르르 떨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계산을 하고 나올 때, 사장님은 바쁜 와중에도 잊지 않고 인사를 건네신다.

"탱고야, 조심해서 가고! 또 와요."


나는 문을 나서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답한다. 사장님, 부디 건강하시라고. 젠트리피케이션이니 프랜차이즈니 하는 거친 파도 속에서도, 이 따뜻한 식탁만큼은 오래도록 경대 동문을 지켜달라고.


차가운 바깥공기가 다시 얼굴에 닿지만, 뱃속과 마음속에 채워진 온기 덕분에 돌아가는 길은 춥지 않다. 나는 탱고에게 "가자!" 하고 힘차게 말을 건넨다.



[대체 텍스트 : 시각 없는 사진 3 - 식당을 나서는 길]

소리: 등 뒤에서 다시 '딸랑' 하고 닫히는 문 소리. 멀어지는 식당 안의 웅성거림.

촉각: 부른 배를 두드릴 때의 만족스러운 진동. 하네스를 쥔 손에 전해지는 탱고의 힘차고 리듬감 있는 발걸음.

여운: 입안에 은은하게 남은 달콤하고 매운 간장 소스의 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