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은 차가운 금속성 젤이 척추 라인을 따라 발라지는 느낌에 몸을 움찔했다. 곧이어 ‘엑소-워커(Exo-Walker)’ 슈트의 등판이 그의 상반신을 감싸 안듯 결합되었다. 척수 신경과 기계를 연결하는 신경 접속 단자가 목덜미 뒤쪽 포트에 찰칵, 하고 맞물렸다. 윙, 하는 미세한 구동음과 함께 하반신을 감싸고 있는 강화 플라스틱 다리에 전력이 공급되었다. 내 다리가 아닌데도 내 다리인 것 같은 기묘하고 이질적인 감각이 뇌를 때렸다.
“신경 동기화율 98퍼센트. 양호합니다.” 연구원 수진이 태블릿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이번 임상 실험의 명목은 ‘장거리 보행 시 뇌-기계 인터페이스의 내구도 측정’이었지만, 피험자들 사이에서는 ‘고문 테스트’라고 불렸다. 목표는 이 거대한 돔형 연구소의 가장자리를 도는 5킬로미터 트랙을 완주하는 것이었다. 척수 손상 장애인에게 5킬로미터는 비장애인이 마라톤을 뛰는 것 이상의 정신적 에너지를 요구하는 거리였다. 기계가 다리를 움직여준다고 해도, 그 기계에 ‘걸으라’는 명령을 끊임없이 뇌로 보내야 하는 건 인간의 몫이었으니까.
수진은 삼십 명의 피험자를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나는 마지막 3조에 속해 있었다.
가장 먼저 출발한 1조는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지시는 단 하나, “멈춤 신호가 있을 때까지 계속 걷는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의 슈트에는 거리 표시계도, 내비게이션 음성도 차단되어 있었다.
나는 대기실 모니터를 통해 그들의 시점을 지켜보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흰색 복도. 창문 하나 없는 멸균된 공간. 1조 사람들은 처음에는 기계의 힘을 빌려 성큼성큼 걸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직립 보행의 쾌감이 그들의 얼굴에 떠올랐다. 하지만 2킬로미터쯤 지났을 때, 쾌감은 지루함과 공포로 바뀌기 시작했다.
“저기요, 도대체 언제까지 걷는 겁니까?”
오디오를 통해 1번 피험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구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묵묵부답은 그들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10분이 더 지나자, 기계적인 모터 소리 사이로 거친 숨소리와 욕설이 섞여 나왔다. 그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왔는지, 이 고통이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사고 직후, 평생 휠체어에 앉아야 한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느꼈던 그 막막한 어둠과 같았으리라. 결국 한 명이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슈트의 배터리는 충분했지만, 그의 의지가 방전된 것이다.
“못 해먹겠네, 진짜! 내가 햄스터야? 쳇바퀴도 아니고!”
그가 포기를 선언하자 전염병처럼 다른 이들도 멈춰 섰다. 걸을수록 사기는 바닥을 쳤고, 뇌파 그래프는 스트레스 수치로 붉게 물들었다.
두 번째로 출발한 2조에게는 정보가 주어졌다. “총거리는 5킬로미터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복도에는 어떠한 표지판도,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알림도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감각과 직감에 의지해 5킬로미터를 가늠해야 했다.
그들은 초반에 꽤 안정적인 속도를 유지했다. 목표가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지탱했다. 하지만 절반쯤 걸었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혼란이 시작되었다.
“야, 이 정도면 반 넘게 온 거 아니야?” 누군가 물었다.
“아냐, 내 느낌엔 아직 3분의 1도 안 왔어. 모터 과열되는 느낌이 별로 안 나잖아.” 다른 누군가가 반박했다.
어둠 속 항해와 같았다. 몇몇 경험 많은 재활 훈련자들이 “거의 다 왔다”며 서로를 독려했지만, 그 말은 반복될수록 힘을 잃었다. 자신들이 4킬로미터 지점에 왔다고 확신했을 때, 실제로는 3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다. 기대가 어긋날 때마다 피로감은 두 배로 가중되었다. 뇌가 보내는 신호가 흐트러지자 슈트의 움직임도 덩달아 뚝뚝 끊겼다. 그들은 희망 고문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발을 끌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3조의 차례가 되었다.
“민석 님, 준비되셨나요?” 수진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갑시다.”
우리에게는 5킬로미터라는 목표와 함께, 슈트의 햅틱 피드백 기능이 활성화되었다. 시각적인 정보는 없었지만, 500미터를 통과할 때마다 목덜미의 단자를 통해 짧고 명쾌한 진동이 전해지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그 진동은 ‘당신은 해내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였다.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뇌에서 ‘왼발’이라고 명령하면 기계가 윙, 소리를 내며 왼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오른발’이라고 생각하면 바닥을 밀어냈다. 이 단순한 반복은 엄청난 집중력을 요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허리의 통증이 도졌다. 하지만 그때, 목덜미에서 ‘징-’ 하는 짧은 진동이 느껴졌다.
첫 번째 500미터였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막연한 5킬로미터가 아니라, 이제 4.5킬로미터가 남은 것이다.
1킬로미터, 1.5킬로미터. 진동은 정확한 간격으로 찾아왔다. 다리가 무거워지고 신경 연결 부위가 화끈거릴 때마다, 우리는 다음 진동을 기다리며 버텼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그 짧은 진동 한 번이 고갈된 정신력을 다시 채워주었다.
우리는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것처럼 리듬을 탔다. 누군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슈트의 모터 소리에 맞춰 박자를 넣었다.
“야, 방금 진동 왔어? 이제 딱 절반이네.” 내 옆에서 걷던 남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웃었다.
“네, 이제 반만 더 하면 됩니다. 내리막길이나 다름없죠.”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그것은 쾌감이었다. 불확실성이라는 안개가 걷힌 길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3조의 걸음은 2조보다 경쾌했고, 1조보다 단호했다. 우리는 1킬로미터씩 목표를 잘게 썰어 먹어치우고 있었다.
마지막 4.5킬로미터 진동이 울렸을 때, 우리는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다리의 감각은 없었지만, 뇌는 날아갈 듯 가벼웠다.
결국 우리는 2조를 추월했고, 트랙 중간에 널브러져 의료진의 케어를 받고 있는 1조 사람들을 지나쳐 가장 먼저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돔 천장의 조명이 깜빡이며 완주를 알렸다.
나는 슈트의 전원이 꺼지는 소리를 들으며 휠체어로 옮겨 탔다. 다리는 묵직한 고철 덩어리처럼 늘어졌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수진이 다가와 내 목 뒤의 단자를 분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데이터가 아주 흥미로워요.”
“뭐가 다릅니까?” 내가 물었다.
“근육 피로도나 배터리 소모량은 세 그룹이 거의 비슷했어요. 하지만 뇌파 스트레스 지수는 천지 차이네요. 3조는 마지막 구간에서 오히려 도파민 수치가 올라갔어요.”
나는 땀을 닦으며 트랙을 돌아보았다. 저 긴 회랑을 우리가 걸어왔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재활도,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장애를 입은 후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걷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막함이었다. 목표가 명확하고, 내가 지금 어디쯤 와있는지 알려주는 작은 이정표만 있다면, 인간은 기계보다 더 강하게 버틸 수 있다.
나는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탈의실로 향했다. 다음 주에 있을 10킬로미터 테스트도, 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뇌 속에는 이미 나만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