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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접근성과 칸트의 알고리즘

by 김경훈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도덕이 취향이나 문화에 따라 상대화되던 시대에,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될 수 있는 절대적 도덕 법칙을 세우려 했다.

그가 제시한 ‘정언명법’은 마치 하나의 잘 짜인 윤리적 알고리즘처럼 작동한다.

특정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은지 판단하고자 할 때, 그 행위를 하나의 준칙으로 추상화해 보편화 가능한지를 묻는다.

이 보편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행위는 결코 따라야 할 의무가 될 수 없다.


정보학을 연구하는 한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관점에서, 이 250년 된 도덕 알고리즘은 오늘날 디지털 사회가 마주한 핵심 윤리 문제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예컨대 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공공 서비스를 위한 앱을 설계한다고 가정하자.

그는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위해 시각적 이미지 기반의 인증 시스템을 도입하려 한다.

그러나 이 인증 방식은 이미지 인식을 어렵게 만드는 특성상, 시각장애인은 물론 노인이나 저시력자, 일시적 부상자 모두에게 접근성을 차단하는 벽이 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칸트의 정언명법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개발자는 자신의 행위를 다음과 같은 준칙으로 구성한다.

“효율성을 위해 일부 사용자의 접근성을 희생하는 기술을 채택한다.”

그리고 이 준칙을 보편화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만약 세상의 모든 개발자가 효율성을 위해 접근성을 희생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가?”


그 결과는 자명하다.

디지털 사회는 곧 수많은 보이지 않는 장벽들로 나뉘고, 약자들은 공공 정보와 서비스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정보 접근성은 무너지고, 인터넷은 모두의 것이 아닌 일부만을 위한 세계로 전락한다.

따라서 이 준칙은 보편화될 수 없으며, 정언명법에 따라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행위이다.


이 결론은 오늘날 정보윤리의 핵심 원칙인 유니버설 디자인의 철학적 기반과 정확히 겹친다.

“이 설계가 모두에게 적용되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은 곧 “그 준칙이 보편화될 수 있는가”라는 칸트의 물음과 다르지 않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단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의무를 구현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소수자를 위한 시혜적 조치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자율적이고 동등한 목적 그 자체로 대우해야 한다는, 이성적 존재라면 마땅히 따라야 할 도덕적 의무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이 의무를 저버리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도덕적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위협이다.


250년 전 칸트가 설계한 이 도덕 알고리즘은 오늘날의 인공지능 설계자,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공공정책 입안자에게 여전히 유효한 윤리의 나침반을 제공하고 있다.

기술이 인간보다 앞서 달려가려 할 때, 우리는 이 오래된 철학자의 알고리즘을 통해 묻고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만드는 세계는,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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