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라는 신의 죽음
인공지능이 신탁을 내리고 알고리즘이 우리의 취향을 결정하는 시대다. 사람들은 이제 궁금한 것이 생기면 사유하기보다 검색창에 매달린다. 마치 급하면 부처님 다리를 끌어안는 심정으로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변에 인생의 결정을 맡기곤 한다. 하지만 문헌정보학을 파고드는 연구자로서 니체의 선언을 빌려 말하자면 이제 우리 마음속의 알고리즘이라는 신을 죽여야 할 때가 왔다.
기술적 복음과 정보적 허무주의
니체가 살았던 시대의 신이 종교였다면 현대의 신은 기술이다. 사람들은 기술이 발전하면 모든 정보 격차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위험한 환상이다. 기술에만 의존하는 태도는 주체적인 삶을 포기하게 만들고 결국 정보적 허무주의에 빠지게 한다.
인공지능이 요약해 준 텍스트가 정답이라 믿으며 스스로 비판적 검증을 포기하는 상태. 이것이 바로 니체가 경고했던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신이 어떻게든 해 주겠지라는 안일함이 알고리즘이 어떻게든 정답을 찾아 주겠지라는 태도로 치환된 것이다. 이 나약한 연결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기술이라는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비로소 정보의 바다에 홀로 던져진 자신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다.
리터러시 : 한계를 극복하는 위버멘쉬의 사양
니체의 위버멘쉬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다. 정보학적 관점에서 이 초인은 고도의 정보 리터러시를 갖춘 주체적인 이용자다.
공간 접근성이나 디지털 장벽을 허무는 것은 국가와 시스템의 몫이지만 그 안에서 정보를 어떻게 소화하고 활용할지는 오롯이 개인의 역량이다. 도구가 좋아질수록 이용자는 도구에 종속되기 쉽다. 스크린리더가 텍스트를 읽어 주고 AI가 데이터를 정제해 주더라도 그것을 평가할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도구의 노예일 뿐이다. 진정한 정보 위버멘쉬는 기술이라는 지팡이에 의지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지팡이를 휘둘러 자신만의 지식 영토를 확장하는 자다. 기술이 주는 편리함 뒤에 숨지 않고 정보의 무결성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고민 없는 일상을 위한 지적 독립
내가 꿈꾸는 연구의 종착지는 거창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고민의 부재다. 비장애인이 서점에 가거나 식당을 찾을 때 내 자리가 있을까를 미리 걱정하지 않듯이 장애인들도 일상의 데이터에 즉각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는 단순히 기술을 설치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이용자 개개인이 정보 리터러시라는 근육을 키워 시스템의 오류를 지적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인덱싱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 정보를 선별해 주길 기다리는 태도를 버리고 스스로 정보의 가치를 창출하는 초인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알고리즘이라는 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신에게 무릎 꿇지 않으려 한다. 신은 죽었다는 선언은 곧 내가 내 정보 인생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전포고와 같다. 알고리즘이 정해준 길이 아닌 내가 직접 인덱싱한 길을 걸어갈 때 정보 리터러시는 단순한 능력을 넘어 존재의 증명이 된다. 오늘도 나는 연구실의 텍스트 더미 속에서 당연한 일상을 코딩하며 나만의 위버멘쉬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