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삼일절이다. 이날이 되면 거리 곳곳에 태극기가 내걸리고, 전국 각지의 기념식장에서는 추모의 묵념이 이어질 것이다. 이 엄숙한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관행적으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함께 부르곤 한다. 하지만 삼일절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두 단어를 나란히 부르는 것이 과연 정확한 쓰임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두 단어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만, 그 정확한 지시 대상을 아는 이는 드물다. 순국선열은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다 목숨을 바친 이들을 뜻하며, 호국영령은 전쟁터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의미한다. 즉, 삼일절의 묵념은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을 향해야 하며, 호국영령은 한국전쟁이나 현충일과 같은 맥락에서 기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 보도나 공공 행사에서조차 이 두 단어가 혼용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무지의 결과라기보다는 어렵고 무거운 한자어를 사용해야만 추모의 격식이 갖춰진다고 믿는 경직된 언어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려운 말을 쓰면 품위 있어 보인다는 착각, 혹은 상대가 내 말을 오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습관이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진정한 소통과 추모는 발화자의 지식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청자가 그 뜻을 온전히 마음에 새길 수 있을 때 완성된다.
따라서 굳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순국선열 대신 독립유공자, 호국영령 대신 전쟁유공자라는 명확하고 다가가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부르는 것을 제안한다. 이 단어들은 누구나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단어가 쉬워진다고 해서 그분들을 향한 존경과 추모의 깊이가 얕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기억하고 묵념해야 할 대상의 범위도 시대의 변화에 맞게 넓어져야 한다. 지난 이천십칠년에 개정된 국민의례 규정은 행사 성격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묵념 대상을 임의로 추가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나라를 위한 헌신이 과거의 독립운동이나 전쟁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희생한 민주화 유공자, 그리고 오늘날 화재와 재난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을 구하다 순직한 소방관과 경찰관 등 공무원들 역시 국가유공자로서 공식적인 추모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추모의 언어를 쉬운 말로 바꾸고 그 대상을 현대의 다양한 헌신으로 확장하는 일은 과거의 역사를 더 깊이 포용하고 오늘날 우리가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지를 증명하는 뜻깊은 작업이 될 것이다.
언어는 시대의 거울이며, 추모의 방식 역시 고정된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어려운 단어의 장벽을 허물고 기억의 외연을 넓힐 때, 공동체의 유대는 더욱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