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고 싶은 건 이그젝틀리 페리카나 치킨이었다. 비비큐도 아니고, 비에이치씨도 아니며, 교촌도 아니다. 푸라닭도 아닌 것이, 오빠닭이 아님은 물론,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은 더더욱 아니다. 한 치 오차 없이 페리카나다. 못된 심보가 있어서 유행이 되면 싫증이 난다. 치맥이라는 국제 공용어가 생기면서 그 조합이 식상해졌다. 한동안 섭취하지 않으면 몸에서 원한다. 며칠 전 갑자기 시냅스가 연결되며 대뇌 피질에 ‘치킨을 먹어라’ 명령 내렸다. ‘페리카나로’가 단서로 붙었다.
국민학교 졸업 전,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휘황찬란한 닭집이 새로 생겼다. 부친과 모친 두 내외가 이따금 호프 한 잔 부딪치러 가던 후라이드 통닭집과는 사뭇 다르다. 당대 최고 인기 희극인 최양락 씨가 일본 애니메이션 ‘요술공주 샐리’의 주제가를 개사해서 부른 시엠송이 한창 티브이 전파를 타던 때다. 바로 그 닭집이 동네에 들어온 것이다. 부모님 내외의 취향을 거슬러 그리로 밀어붙였다. 그날 태어나 처음 맛본 양념한 통닭, 원가를 아끼지 않는 공격 경영의 일환이었던 것일까. 값비싼 인삼 향이 후각을 때리던 그 달콤한 소스는 그대로 내 취향의 오리진이 되었다.
엊그제 늦은 밤 대학원 수업을 듣고 귀가하니 꼬르륵 위장이 공회전한다. 부인, 딸, 우리 치킨 시켜 먹을까. 나 배불러, 일단 딸은 탈퇴 선언이다. 아내는 지금 시켜서 언제 받아서 언제 먹고 언제 소화시키고 자냔다. 그치, 많이 늦었지. 깔끔 포기다. 잘됐다, 지금 고비를 넘어야 내일 아침 체중계 위에서 후회하지 않는다. 냉장고에 여남은 딸아이 우아한 조식 재료를 그러모아 대강 샌드위치를 조립한다. 한입 크게 물며 지금 미뢰로 수용되는 맛이 양념치킨의 그것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다. 부인, 내 명일은 오늘보다 서둘러 올 터이니 페리카나 반드시 시켜 먹읍시다!
그렇게 어제. 정식 대학원 수업이 아닌 특강 세미나가 있었다. 출석 명부에 이름 쓰고 대강당 최후방에 앉았다가 슬쩍 사라질 요량이었다. 내가 믿는 신은 나의 비행을 용인할 의사가 없다. 교수님이 알은체 하시더니 앞자리로 옮기라 권한다. 분부대로 행하며 어부인께 문자를 보낸다. 아까 오후에도 아내가 톡으로 내게 기척했었다. -저녁때 페리카나? -콜! 그러기를 몇 시간 만에 아내에게 비보를 전한다. 일찍 가긴 틀린 듯, 먼저 시켜서 맛보고 계시오.
아는 맛이 이따 닭 먹으며 같이 볼 <심야괴담회>보다 무섭다. 초자연적 존재에 쫓기던 사람처럼 신발을 뒤로 벗어 차며 거실로 뛰어든다. 왔어? 왔지. 나 집에 왔다는 문답이 아니다. 치킨 왔느냐는 그것이다. 먹고 씻자. 훌렁훌렁 옷 벗어던지고 싱크대에서 손만 세제로 대강 씻어 거실 탁자 앞에 앉는다. 치킨 상자 개봉박두의 순간인데.. 으엥? 멕, 시, 카, 나?! 내 페리카나 어디 갔니??!!
페리카나 안 시켰어? 아내 답한다. 오빠가 멕시카나 얘기하지 않았어? 내게 반문하며 부부 채팅방을 손가락으로 훑는다. 난 안 봐도 안다. 엊그제부터 페리카나 노래를 불렀다. 아까 낮에 아내가 보내온 톡에도 페리카나라고 쓰여 있었다. 페리카나를 멕시카나로 혼동하는 건 가수 이승환을 이수만으로 잘못 듣는 것보다 미시세계의 확률로 개연성 없는 일이다. 기대가 박살 난 시추에이션이지만 그깟 닭 한 마리 때문에 역정 내는 팔푼이 같은 부군이 될 순 없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아내는 짐짓 시선이 흔들리면서도 내색 않으려는 눈치다. 얼른 탁자로 오지 않는다. 의연한 척 내가 먼저 퍽퍽 살 하나를 들어 깨문다. “멕시카나도 맛있네. 맛이 없었으면 서운할 뻔했는데 다행히 맛이 제법 있어. 어여 와서들 드시오들!”
그 후로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대요, 스토리가 이렇게 끝났으면 글줄로 회고할 까닭도 없었을 터. 지금 생각하면 애당초 그 말을 끝에 붙인 내 잘못이다. “이것도 옛날 시장 스타일 양념치킨 같고 맛이 없지 않은데 다음에는 잘 주문해 줘.” 아, 여기서 글쓴이 네가 직접 오더하지 그랬느냐 나무랄 분들에게. 한 달에 요금 얼마 내면 택배와 배달 주문이 할인되는 아이디를 아내가 가지고 있다. 신용카드와 연동되므로 내 스마트폰으로 접속하지 못한다. 잇자면, 그 말에 아내 답하며. “그럴 거면 이제부터 오빠가 시켜. 돈 좀 더 나와도 상관없어. 만날 이 집에서 필요한 거 사소한 하나까지 나만 신경 쓰고. 가뜩이나 오빠 예민해서 이런 일 생기면 힘들어 죽겠단 말이야.”
알았어, 맛있게 먹자, 할 것을. 승질 못 버려서 기어이 언쟁으로 키운다. 거 말을 그렇게 밖에 못하느냐, 그냥 딴 거 시켜서 미안하다, 다음부턴 제대로 주문하겠다, 이렇게 받아주는 게 매끄럽지 않겠느냐 말하면서 감정을 싣는다. 상대도 물러서지 않는다. 꼭 그렇게 사과를 받아야 되느냐, 결국 듣고 싶은 말이 그거냐, 원하던 거 지금 다시 주문하라며 받아친다. 여기서 더 가면 음식 앞에 놓고 큰 싸움이 되는 걸 안다. 그러면서 세컨드, 써드 웨이브를 보낸다. “반드시 사과받겠다, 그런 건 없는데 부인은 먹고 싶던 거 못 먹게 된 사람 서운한 감정 헤아릴 생각은 요만큼도 없고 자기 방어만 열심이잖아. 그깟 닭 한 마리 잘못 주문한 거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걸 받는 마음이 난 섭섭한 거라고. 그냥 먹고 싶은 게 있었을 텐데 내가 잘못 시켜서 미안하다, 오늘 확실히 알았으니 다음에는 헷갈릴 일 없겠다, 이 두 마디면 넘어갔을 거라고!”
잠시 휴지기를 가진다. 안 먹겠다는 아내를 억지로 탁자로 이끈다. 식은 음식을 전자레인지로 데워 온다. 늘 사과는 내 몫이다. 입맛 까다로운 남편이 따지기도 좋아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러면서 아내의 고슴도치 같은 방어기제 역시 나 좋아하는 대로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 크다고 인정했다. 직장 다니랴, 며느리에 엄마 노릇하랴, 살림살이까지 정신이 없는데 남편이라고 하나 있는 게 도와주진 못할망정 대범하지 못하게 사소한 걸로 꽁하게 구니 신경이 곤두서고 스스로 방어하는 벽이 높아지는 게 당연하다며 달랜다. “아까 낮에 연예 뉴스에서 봤는데 오래 같이 산 유명인 부부가 갈라섰다더라. 그들도 어쩌면 우리처럼 사소한 일이 발단이 돼서 그런 걸 수도 있겠어. 부인이 언제였더라 나랑 싸우는 거 싫다고 했지만 나는 마냥 싸움을 피하는 게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야. 부부가 잘 싸워야지. 사소한 감정 쌓아서 큰일 만들 게 아니라 적절한 때에 잘 싸워야지. 싸워야 서로 사고의 차이를 발견하고 이해를 높이지.” 아내가 시옷자 입술이 돼서 마지못해 끄덕인다.
들불로 번지기 전에 불씨를 잘 꺼뜨렸다. 이쯤이면 말 그대로 잘 싸운 셈 아닌가 싶다. 아내가 함께 주문한 생맥주를 잔 두 개에 보기 좋게 따른다. 자자, 기분 풀고 기왕 시킨 거 맛있게 먹읍시다! 자 짠, 어서! 헛웃음과 데설웃음 사이를 가르며 아내가 술잔을 받아 든다. 오늘도 치킨에 심드렁한 딸아이는 뒷자리 소파에 길게 누워 <심야괴담회> 시청 중이다. 딸 다리 하나 먹어봐! 아, 안 먹는다고! 아빠랑 엄마랑 싸우는 통에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려! 좀 조용히 하라고! 얼른 먹고 치우고 양치하고 자자. 불 끄고 누운 아내가 이불킥 하며 상반신을 세운다. “우쒸, 왜 멕시카나였는지 생각났어! 낮에 회사에서 경쟁사 외식업체 메뉴 개발 서류에 있던 거였어! 아오!!” 페리카나가 멕시카나로 된 마법의 비밀이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