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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토막생각

치악력

by Hoon

지난해 이맘때 해 넣은 인공 치아를 정기적으로 살피기 위해 치과에 가서 누웠다. 그 치아는 다행히 온전히 자리 잡았다. 의사가 다른 치아들을 거론한다.

“치악력이라고 하지요, Hoon 님은 씹는 힘이 너무 좋으셔서 실금이 가거나 끄트머리가 깨진 이가 두어 개 보이네요.”

내가 악어나 하마도 아닐 진데, 내 이를 내가 부술 정도라니. 살면서 어느 면에서든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던 터라 어색한 당혹감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눈 떠지니 출근한 일터에서 나도 모르게 입을 앙다물고 있는 자신을 인지한다. 긴장으로 굳은 턱 근육이 위아래 어금니를 서로 틈새 없이 격돌하게 종용한다. 입아귀가 뻐근할 지경이다.

이십여 년 전 캠퍼스 안에서, 오직 나 하나의 미래만 걱정하면 되던 시절-전반부 상당 기간은 그것마저도 없었다-에는 분명 없었을 버릇이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을 놈들의 공격에 대비하느라 부지불식간에 인체에 습득되었을 터. 업무 내외적 도발과 시비에 맞선 방어, 부당함에 대한 필연적 상기의 일상적 반복이 자해의 흔적으로 남았다.

뺨을 어루만져 근육의 긴장을 풀어준다. 턱을 길게 뺐다 제자리로 돌리며 위아래 어금니의 아귀 맞춤을 느슨히 한다.

이후의 여생에서는 내가 내 치아를 고장 내는 잔혹한 결의가 없기를,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 잠깐의 순간 안에서 조용히 빌어본다. [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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