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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햄스터 집을 온 가족이 청소하는 방법

by Hoon

드디어 미루고 미루었던 햄스터 집 청소를 했다. 작은 계란 하나 크기 햄스터지만 녀석이 사는 집을 치우는 건 혼자 하기 버겁다. 아내와 딸아이, 그리고 나까지 온 식구가 힘을 합쳤다. 치우자, 마음먹기까지 얼마나 망설였던가. 눈에 힘 빡, 앙다문 입술로 세 식구 표정이 같아진다.

우리 집 햄스터는 사납다. 개나 고양이만 사나운 게 아니다. 처음 동네 마트에서 거금 5천 원을 입양의 대가로 치르고 데려온 날 바로 확인한 사실이다. 플라스틱과 철사 재질로 알록달록 예쁘게 생긴 새 집을 조립해주었다. 집으로 옮겨주려고 햄스터에 손을 가까이 가져간 순간, 따끔한 통증이 온다. 집게손가락 끝 마디 손톱 밑에 요만한 핏방울 두 개가 맺혔다. 궁서설묘(窮鼠囓猫),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들어보기는 했다. 햄스터도 ‘쥐과’라 이 말인가.


햄스터 씨가 우리 집에 기거하게 된지는 어언 1년을 채워간다. 우리 세 식구는 각자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 단계별 구분 동작으로 설명하겠다.

먼저, 햄스터를 집 밖으로 유인해야 한다. 맨 손으로 만졌다간 유혈 사태를 부른다. 위험한 일은 내 몫이다. 우리 집에서 좀처럼 쓸 일 없는 목장갑을 꺼낸다. 의학 드라마에 흔한 장면처럼 결의에 찬 각오로 두 손에 나눠 낀다. 햄스터의 임시 거처가 될 작은 상자를 준비한다. 햄스터 집 앞 쪽, 걸쇠로 된 문을 열고 상자를 밑에 받친다. 항시 탈출의 욕구가 있는 햄스터는 이내 열린 문으로 몸을 반쯤 내민다. 이때, 장갑 낀 손으로 궁둥이를 재빠르게 밀어 상자로 살포시 낙하시킨다. 상자 뚜껑을 얼른 닫는다. 아, 숨구멍은 미리 뚫어두었다.


집을 분해한다. 깡그리 허물어야 한다. 나와 아내의 공동 작업이다. 천정과 바닥, 외벽을 분리한다. 문제는 바닥재로 깔아놓은 편백나무 톱밥을 들어내는 일이다. 그 작은 몸집에서 무얼 그렇게 많이 싸 대는지,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한 편, 그런 악조건에서 몇 날 며칠을 버텨왔을 녀석을 생각하면 많이 미안해지기도 한다. 나라도 여긴 못 살겠다.


집을 씻는 건 아내 몫이다. 아내 역시 의학 드라마의 클리셰를 연출한다. 고무장갑을 양 손에 끼우고 화장실 샤워기를 켠다.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불난 곳에 소화기를 겨누듯 물줄기를 쏜다. 공기 중으로 비산하는 악취가 거실로 넘어오려고 한다. 미안하지만, 화장실 문을 살짝 닫아야겠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햄스터를 감시한다. 그 좁은 상자에서도 탈출하겠다고 즉시 한쪽 귀퉁이를 이빨로 갉아낸다. 가끔 뚜껑을 열어 컨디션을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토실토실, 긴 털 스웨이드 같은 등허리라도 쓰다듬어 보고 싶지만 아이는 손가락만 기웃거린다. 아빠가 물리는 현장을 직접 봤거든. 아직은 용기가 없다.


아내가 집 부속을 씻어오면 내가 다시 조립한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 바닥 위 사면에 벽을 올리고 뽀송뽀송한 새 톱밥을 깔아준다. 반구 모양의 코코넛 열매로 만든 수면실을 놓는다. 복층 구조로 된 미끄럼틀과 모래찜질방도 얹는다. 물통을 붙이고 천정을 덮는다. 아, 쳇바퀴 설치를 빠뜨렸다. 천정을 다시 연다.


이윽고 마지막 순서다. 햄스터를 깨끗해진 집에 다시 넣는다. 그 짧은 사이 상자에 똥을 많이도 싸 놨다. 열린 문틈을 잘 조준하여 햄스터를 미끄러뜨린다. 이번에도 엉덩이가 걸렸다. 장갑 낀 손으로 툭 민다. 나이스 착지.


햄스터가 전에 없던 활기를 찾는다. 너무 빤해서 지겨워졌을 법도 한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쳇바퀴도 열심히 굴려본다. 하얀 모래를 깔아놓은 플라스틱 방으로 가서 몸을 요리조리 뒹군다. 목이 탔는지 물통 밑에 매달려 샤프심만 한 혀를 날름거린다. 표정만 보아선 조금은 행복해 보인다.


우리 세 식구 표정도 햄스터랑 비슷해졌다. 묘한 성취감마저 느껴진다. 사는 게 별건가. 집이 최고지. 그 집이 더럽거나 냄새나지 않고 편하게 몸 누일 정도면 꽤 행복한 거 아닌가. 아직 많이 남았을 거라 기대하는 우리 세 식구 앞날도 오늘처럼 요령껏 손발 맞춰가며 ‘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햄스터 저렇게 좋아하는데 이제 자주자주 갈아줘야지 싶지만 그 결심 얼마나 갈지 모를 일이다.


이제 좀 느긋하게 쉬며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가 비운 자리 대신하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편하게 볼 수 있나 싶었는데 아내가 부른다. “오빠, 쓰레기 분리수거 버리러 가자.” 일요일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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