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부엌 바닥 왁스칠을 하면서 다른 주부들은 다들 느낀다는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베티 프리단은 이것이 자신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로 규정되는 자신의 삶에 등장하는 의문부호를 자각하고 있을 즈음, 잡지사 제안을 통해 스미스대학을 졸업한 지 15년이 지난 동창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하게 되고,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고민과 동창들의 일관된 증언, 그리고 심층 면접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 책을 쓰게 된다. 재니, 에밀리의 엄마로서, 아니면 B. J.의 부인으로서 삶에 만족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유한 권리를 가진 인간이고자 하는 욕망을 억압당한 채 살아야 했던 미국 여성들의 불안과 갈등을 그녀는 ‘이름 없는 문제’라 명명했다.
교외의 멋진 저택에 사는 주부. 젊은 미국 여성들이 꿈꾸는 자화상이며, 전 세계 모든 여성들이 부러워하는 여성들. 건강하고 아름답고 지적이며, 자기 남편과 아이, 집에만 관심을 두는 여성들. 하지만 가정주부이자 어머니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
침대를 정리하면서, 식품점에서 물건을 사면서, 의자 커버를 씌우면서, 아이들과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아이들을 소년단과 소녀단으로 태우고 다니면서, 그리고 밤에 남편 옆에 누워 있으면서 이 조용한 물음 – “이것이 과연 전부일까” – 을 자신에게조차 던지기 두려워했다. (54쪽)
여성들은 이것을 표현하려고 할 때, 공허함을 느낀다고, 불완전하다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진정제를 복용한 여성들도 있었고, 아이들에게 굉장히 화를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때때로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집을 뛰쳐나가기도 하고, 집안에 처박혀 울기도 한다고 했다.
프리단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고통 속에 있는 여성들은 교육 수준의 고하를 막론하고 같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1950년대 이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많은 여성들이 의사를 찾아갔을 때, 이 문제를 조사한 어느 의사는 놀랍게도 일명 ‘가정주부 피로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성인에게 필요한 수면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인 하루 10시간 정도의 수면을 취하며, 그네들이 실제 집안일에 소모하는 에너지는 개인 능력의 한도까지 혹사시킬 정도의 양은 아니라는 걸 알아냈다. 그렇다면 왜 그녀들은 이런 무기력감에 사로잡히게 된 걸까.
베티 프리단은 1949년 이후 <레이디즈 홈 저널>, <맥콜>, <굿 하우스 키핑>, <우먼즈 홈 컴패니언>등의 각종 여성 잡지들이 편집 방향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남자 필진들에 의해 ‘여성의 신비’를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여성의 신비는 여성의 가장 큰 가치와 유일하게 전념해야 할 목표가 자신의 ‘여성다움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99쪽), 주부를 모든 여성의 이상형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성의 신비’가 추구하는 여성상은 집을 화려하게 꾸미고 요리, 빨래, 청소 그리고 아이 낳는 일에만 몰두하는 존재로서, 어머니, 아내, 주부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면서 이를 통해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여성이다.
오늘날 여성 문제의 핵심은 성적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에 관한 문제, 즉 여성의 신비 때문에 영속화된 성숙을 방해하고 기피하는 문제라는 것이 내 논제다. 또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가 당시 여성들로 하여금 기본적인 성적 욕구를 인정하거나 충족시키지 못하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문화 구조가 여성으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발전시키려는 기본적인 욕구, 즉 성역할에 의해서도 전혀 제한받을 수 없는 욕구를 인정하거나 충족시키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것이 내 논제다. (150쪽)
저자는 ‘여성의 신비’로 인해 가정과 가족들에게만 그 임무가 인정된, 오직 그 임무에만 한정된 여성으로서의 삶이 그녀들을 옥죄고 있다고 판단한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서만 그 정체성이 규정될 때, 삶의 무력감,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업주부 여성들이 하루 종일 몰두하는 주부의 역할, 집안일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무한히 계속되는 일이다.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이며,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여성이 하는 일, 즉 가사는 그녀에게 어떤 지위도 줄 수 없다. 그것은 사회의 어떤 일보다 낮은 지위이며, 쉽게 대체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영역이다. 인간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가정이라는 좁은 벽 속에서 제한된 일을 반복하게 되었을 때, 여성들의 허탈감은 극에 달했고, 이러한 여성들의 절망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조사 결과가 이어졌다. 아이들을 더 ‘사랑’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녀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이어졌고, 어머니의 과잉보호 때문에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들에 대한 보고 또한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여성에게 주입되는 로맨틱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환상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가정생활을 통해서, 남편을 통해서, 아이들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공허함과 허탈감을 달래 줄 그 무언가를 찾지 못한 여성들은 방황하고 갈등한다. 베티 프리단은 그런 여성들에게 새로운 인생 계획을 시작하라고 제안하는데, 사회에 공헌하는 창조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인간으로서 독립성, 개성, 자아실현의 욕구를 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라고 제안한다.(543쪽)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대학 등을 통한 ‘전문 교육’을 받을 것을 제시한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지난 여성들에게, 20대 초반의 대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하라는 저자의 마지막 제안은 조금 충격적이기까지 한데, 그녀가 그 어렵고 힘든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책의 마지막 제안은 독자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주문과 같다. 그녀의 주문은 마법처럼 이루어져, 그녀의 책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그녀는 예전의 자신, 교외의 전업주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살고 있던 지역에서 따돌림을 당해 도시로 이사 가야만 했고, 결국에는 완벽하게 바뀌어 버린 자신의 삶처럼 사회를 바꾸기 위한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성적 차별에 반대하는 법률을 강제하지 않는 회사에 대항해 싸웠고, ‘NOW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an)’을 창설했다.
가정이라는 벽에 갇혀 절망하고 방황하는 많은 여성들의 고민과 갈등은 바로 내 것이었기 때문에, 이 책은 더욱 의미 깊었다. 남편을 사랑하고 아이들이 너무나 예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아쉬움을 나 개인의 것으로만 돌렸다. 행복하다 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여성성의 신화’란 만들어진 ‘환상’ 일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살림’이 '직업'이되 '전문적'이지 않아도 되는 나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었다. 야무지고 깔끔하게 살림을 잘하지 못해도, 살림, 육아, 음식에 관심이 없고, 주부 10단이 아니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여성적이지 않아도,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들어진’ 여성성의 신화를 꼭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다. 한결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