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은 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를 담은 강준만의 저서다. 낡은 시대와 새로운 시대의 충돌을 보여주는 1990년대부터 시작해서 인터넷이 유행시킨 ‘된장녀’의 등장, 2005년 3월 2일 호주제 폐지, 권력 불평등으로 인한 뿌리 깊은 성폭력 및 성희롱 사례, 페미니즘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포와 혐오, 여성 저항의 티핑 포인트, 페미니즘보다 여성 혐오가 돈이 되는 시대에 대해 밀착 보고한다. 메갈리아를 둘러싼 갈등, 페미니즘과 촛불 시위의 배신, 『82년생 김지영』과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백래시 그리고 미국, 한국을 뒤흔든 미투 운동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파탄, 끈질기고 가열찬 남성 연대의 훼방과 다양한 반발 행태 또한 기술되어 있다.
자타공인 최고의 한국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기록자’이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대 물량의 ‘증언자’로서 저자 강준만 교수는 한국 페미니즘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페미니즘 이슈가 주목받게 되었을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해줌으로써, 페미니즘이 사회 전체를 강타하는 돌풍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개인적으로는 <제7장 페미니즘과 진영 논리의 충돌>이 가장 읽기 어려웠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 X민주주의』를 진작에 읽고도 리뷰를 쓰지 않은, 정확히는 쓰지 못한 이유와도 겹쳐진다. 아무도 내 의견을, 내 입장을 묻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생각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10여 번 이상 회자되는 유시민의 ‘해일이 일고 있는데 겨우 조개나 줍고 있냐’는 진보 운동권 내부의 ‘조직 보위론’, 김어준의 ‘미투 음모론’,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의견을 밝힌 인사들에 대한 네티즌들의 무차별적 공격 등은 ‘제1의 민주화운동’에서 남성들의 희생적인 동반자였던 여성들이 ‘제2의 민주화운동’에서는 진보성향 남성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수 진보를 아우르는 남성연대의 견고함에 한없이 감동할 뿐이다.
‘메갈리아는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유일한 당사자’라는 2017년 7월 30일 자 한겨레 기고문과 탁현민의 <남자 마음 설명서>에 대한 글을 3회 기고하면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은 여성학자 정희진의 위력과 ‘문해력 없는’ 남성들의 단합된 힘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나처럼 토요일 아침마다 정희진의 칼럼 때문에 <한겨레>를 기다리던 많은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 주가 마지막입니다’라는 두 어절로 갑작스럽게 정희진 칼럼의 연재 중단을 맞이하게 되는데, 페미니즘과 메갈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는 정기독자들의 한겨레 절독 선언이 주요한 원인이다고 그는 진단한다.
메갈리아의 출현은 극적이다. 온라인상에서 정육점 소고기 ‘부위별 평가’처럼 여성의 신체를 난도질해 품평하던 남성들은 ‘남성 성기를 품평’하는 메갈리아의 출현을 참을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 성기 크기로 남성을 대상화하는 순간 메갈리아는 폭발하듯 태어났다.(167쪽) 메갈리아는 여성에게 부여된 보이지 않는 도덕 하한선(175쪽)을 부셔 나갔다. 우아한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공격적이고 격한 말들이 남성들 자신에게 되돌려진 순간, 남성들은 깨어난다.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디시인사이드 관리자는 근대의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공정성은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왜냐면 김치남은 김치녀를 뒤집은 것인데, 김치녀는 되고 김치남은 안 된다고 하면 자기가 여성 혐오자라는 걸 커밍아웃하는 것이 되니까 그것이 부끄러운 줄 알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부끄러울 수 있었다는 것이 ‘대박’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부끄러워하면서 김치남과 함께 김치녀가 금지되는 걸 본 여성들이 ‘아! 이거 좋은 전략이로구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뒤집어서 되돌려주니까 쟤네들이 꼼짝 못 하더라’ 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미러링을 사용했다고 한다.” (114쪽)
페미니즘과 메갈을 지지하는 혹은 지지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행동, 이를 테면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소동을 일으키는 환경에서, 마초들을 한없이 자극하는 메갈성 글들을 수도 없이 쓰면서 ‘나도 메갈이다’고 선언했던 진중권에게는 덤비는 이가 하나도 없다. 진중권은 메갈도 아닌 여성들은 곤욕을 치르고, 아예 메갈 선언을 하고 다니는 자신이 무사한 이유를, 자신이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마초 사회에서 여성보다 큰 권력을 가졌다는 우월감 하나로 견디고 살았던 알량한 자존심이 '메갈'이니 '페미'니 하는 여자들 때문에 무너져 내리니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메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이나영이 말했듯이, ‘꼴페미’로 불리던 사람들이 ‘페미니스트 교수’로 불릴 수 있었던 건 메갈 덕분이었다.(354쪽)
인간이 대비 효과에 의해 세상을 보는 동물이라는 지적은 흥미롭다. 민노당, 정의당 등 진보 정당의 출현으로 민주당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빨갱이당’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왼쪽의 등장은 왼쪽에 있던 존재의 위치를 가운데로 자리매김해준다. 페미니즘과 메갈의 위치도 이와 비슷하다고 강준만은 지적한다. 급진적이고 공격적인 메갈이 페미니즘의 한 축을 담당해 주었다. 외치고 소리 지르고 저항하는 메갈이. 붉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선 메갈이. ‘소라넷 폐쇄 17년, 홍대 검거 7일’을 꼬집었던 메갈이.
투쟁은 끝없이 펼쳐질 테고,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2005년 호주제 폐지의 역사는, 오늘의 투쟁 후에 가장 혁명적이고 도발적인 ‘구호’가 일상적인 ‘언어’로 들려올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그래서, 『백래시』의 해제를 쓴 문화평론가 손희정의 당부는 귀담아 둘만 하다.
“선언을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실천이 기어코 변화로 이어지는 기쁨은 찰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에 모두를 거는 열정보다는 나가떨어지지 않고 버티는 기술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이제는 고전이 된 『백래시』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아마도 그것일 터이다.” (248쪽)
페미니즘 책만 읽지 말고
마르크스도 프로이트도 사마천도 읽으면서
줄리언 반스도 마거릿 애트우드도 김연수도 읽으면서
나가떨어지지 않고 버티는 기술을 발휘하자.
우리 같이 발휘해보자.
나도 그 기술을 발휘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