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뒤에 올 여성들에게』는 좀 다르다. 『제2의 성』처럼 철학적 탐구를 보여주는 책도 아니고, 『백래시』처럼 수많은 통계자료와 기사를 토대로 한 책도 아니며,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처럼 수려한 문장, 눈부신 통찰이 가득한 에세이도 아니다. 하나의 생각을 밀고 가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일기처럼 쓰인 글이다. 이 책은 회고록이다.
할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손녀였지만 12살이 되자마자 예배당 할아버지 옆자리에서 여자들이 앉는 2층 발코니 자리로 쫓겨났던 일부터 시작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을 선택하고, 멋진 남자와 약혼을 하고, 박사 과정을 밟아가며 아이를 낳고, 또 아이를 낳으며 시간 강사, 조교수 등을 거쳐 종신 교수가 되기까지의 사건들이 시간순으로 펼쳐진다. 또한 CSWEP라는 조직의 설립 초기부터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경제학자로서 자신의 지식과 연구 성과들을 여성의 구체적 현실을 돕는 데 사용하는 모습 또한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마침내 성공했다. 유대인 소수자라는 측면에서 그녀의 성공은 흑인의 성공, 아시아인의 성공, 장애인의 성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부족한 학비를 충당했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지원했으며, 학문적 성취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평범한 성공의 이야기다. 하지만, 인구 절반에 달하는 여성이 왜 아직까지 소수자인지, 또는 소수자일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면, 그녀의 성공이 특별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내 계획은 전혀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샘이 아직 약혼반지를 주지 않았지만, 내 머리는 결혼 생각으로 가득했다. 물론 나는 공부하는 게 좋았다. 내가 훌륭한 학생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제일 원하는 일은 결혼 날짜를 잡는 것이었다.(129쪽)
그녀는 자신이 교수가 될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자신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엄마의 끊임없는 충고에 따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뉴욕 시 고등학교 사회 교사 자격시험을 볼 예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그 일은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일만큼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장면이다. 『여성성의 신화』다.
당시 내게는 사랑보다 더 큰 문제는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버클리대학의 언덕을 남자 친구와 함께 걷고 있었는데 그가 말했다. “우리 사이가 이래 가지고는 아무 일도 안 되겠어. 나라면 당신처럼 장학금을 받지 않을 거야.” 만약 내가 그때 그대로 밀고 나갔다면, 번복할 수 없는 그날 오후의 냉랭한 외로움을 과연 견딜 수 있었을까? 나는 위협에서 벗어나는 안도감을 느끼며 장학금을 포기했다. (150쪽)
교수들이 인정하는 총명한 여학생은 결혼과 직업적 성취 앞에서 망설인다. 선택의 기로에서 베티 프리단은 대학원 장학금을 포기했고, 마이라 스트로버는 도전하기로 했다. 약혼자의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샘이 말했다. “밀은 모두가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할 권리가 있다고 했어. 사람들에게 지워지는 제약이 대부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부과된 것이라고, 좋은 사회는 이런 사회적 제약을 없애는 사회라고 말했지.” 나는 샘의 말에 전율을 느꼈고, 샘을 끌어당겨 꽉 안았다. … 나는 정말 똑똑하고,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남자를 만났다. 내겐 중요한 사실이었다. 내 아버지는 지적 능력이 있음에도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샘은 자신의 지적 능력에 자신이 있었기에 나의 지성에 위축되지 않았다. 샘은 나 역시 성공하기를 바랐다.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남자를 겪어본 적이 없었다. (131쪽)
한 사람은 의대 교수가 되기 위해, 또 한 사람은 경제학과 교수가 되기 위해, 젊은 부부는 분투한다. 그녀는 MIT에서 학비 전액과 생활 보조금 수령 조건으로 박사 과정을 시작했는데, MIT 6000명이 넘는 학생 중에 7퍼센트도 안 되는 400명이 여성이었고, 이 중에 200명이 학부생, 나머지 200명이 대학원생이었다. 그야말로 남자들의 세계에서 들어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고,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녀를 지지해주었던 남편은 이제 한 발짝 물러선다. 자신이 스탠퍼드에서 종신교수가 되기 위해 전력투구해야 하는 이 시점에 가사를 도울 시간을 전혀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강조하자면, 내가 주목하는 건 남자의 선택이 아니다. 존 스튜어트 밀과 함께 그녀의 직업적 성공을 응원했던 남자가 “당신이 버클리에서 성공하길 원하면, 강의하면서도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볼 방법을 찾아야 해.”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가 못 믿을 남자라는 뜻이 아니다. 이런 남자는, 이런 생각은 너무 흔하다.
10년도 전의 일 같은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시인과 그의 아내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다. 책을 읽던 아내는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읽고 있던 책을 열려 있는 다락으로 던졌다. 남편이 아내가 책 읽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책 읽는 모습을 본 남편은 “집안에 공부하는 사람은 하나여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그 하나는 자신, 남편이어야 했다. 남편이 죽은 후에야 아내는 소설집을 낸다. 내 관심은, “내가 먼저야”라고 말하는 남자가 아니다. 똑똑하고 실력 있는 여성이 어떻게 그런 생각과 결정을 받아들였는가,에 대한 것이다.
상황이 더 복잡한 것은 나 역시 샘이 학계에서 성공하기를 내 성공만큼이나 바랐기 때문이다. 나는 샘을 사랑하고, 그가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더구나 그의 성공은 내게도 유익한 일이었다. 그가 훌륭한 커리어를 쌓으면 나 역시 지위나 경제적 혜택을 함께 누릴 것이다. … 내 일이 샘의 일만큼 중요하다고 믿었다면, 형평성을 더 강력히 요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중환자의 생사가 걸린 결정을 하는 그의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의사가 신 바로 다음 자리에 있다고 여기는 동부 유대계 문화를 깊숙이 체득한 사람이고, 미국 문화도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1970년대 직업별 지위를 점수 매기는 던컨 사회경제 지수 Duncan Socioeconomic Index에 따르면, 의사는 100점 만점에 92점이었다. (53쪽)
여성과 남성의 문제가 제일 복잡하면서도 간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내 옆의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다. 사랑할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 사람을 위해 내가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을 위해 내가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기나긴 인류 역사 가운데, ‘여성들’만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데 있다. 누군가 한 명이 직업적 성공을 포기해야 한다면 ‘여성’이 포기한다. 누군가 한 명이 집에 남아 아이를 돌봐야 한다면 ‘여성’이 남는다. 누군가 아픈 아이를 위해 일찍 퇴근해야 한다면 ‘여성’이 서둘러 집으로 온다.
그녀는 양보하고 또 양보했다. 그녀는 ‘경제학 관련 직종에 여성의 비율이 낮은 상황을 바로잡고’, ‘경제 학자들 사이의 성차별을 제거하기 위한 적극적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드는 데 참여한다. 경제학 관련직 종내 여성지위향상을 위한 위원회 Committee on the Status of Women in the Economics Profession, CSWEP가 설립되었고, CSWEP 위원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녀는 매일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또 다른 일을 시작하려 한다는 남편의 불평을 뒤로하고 그 일을 맡기로 결정한다. 종신 교수가 되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연구하면서, 적개심을 가진 학생들과 씨름하면서, 경제학 관련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CSWEP에서 일한다. 그리고 어느 날, 남편이 말한다.
“나는 잘못된 결혼을 한 것 같아. 나는 자기 커리어가 이렇게 힘겨운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 나와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어. 나와 똑같아지려는 사람이 아니라.” (300쪽)
그녀는 이혼했다.
분명 그녀는 성공했다.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 사상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고, 성별에 따른 직업 분리, 가사 노동의 가치 정량화, 차별의 비용 등 새로운 개념들을 정립하여 페미니스트 경제학의 장을 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편을, 제일 가까운 사람을 잃었다. 열네 살, 열두 살, 아이를 남겨두고 남편이 떠났다. 나와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어. 나와 똑같아지려는 사람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똑같아지려 할 때, 배우자처럼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려 할 때, 그리고 성공 지점에 막 도착하려 할 때, 남자는 떠난다.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그녀는 그녀를 100% 지지해 줄 뿐만 아니라, 직업적인 면에서도 상의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만나 재혼한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녀는 자기가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녀 말은 일면 옳다. 여성 운동이 법과 교육제도, 노동조직, 가족, 미디어와 사람들의 사고와 문화 전체를 탈바꿈하고자 노력한 성과(386쪽)에 의해, 그녀는 여성이라는 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커리어를 이룰 수 있었다. 좋은 시기를 맞은 덕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스스로를 믿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냈다. 아이를 둘 키우고, 자신과 다른 처지의 여성을 돕고, 그리고 실력이라는 면에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연구와 수업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말한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일에 동참해달라.
나는 이제 처음 시작한 때보다 내가 추구하는 변화가 심원하고 어려운 것임을, 내 삶에서는 원했던 결과를 볼 수 없을 것임을 이해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경제적 필요가 충족되고 각각이 공적 영역과 사적 생활에서 잠재력을 실현할 기회를 누리는 세상을 향해, 선수나 코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노력할 것이다. 나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내 자식과 손주들이 이 일을 계속할 것을 안다. 아마 경제학자나 교수로서는 아닐 테지만, 모든 이가 힘과 친밀감을 누릴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위해 깊이 헌신하는 여성과 남성으로서 그렇게 해나갈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여러분도 이 일에 동참해주기 바란다. (395쪽)
물론이다. 나도 이 일에 동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