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윈프리다. 기쁨, 교감, 가능성 등의 주제에 대해 오프라 윈프리가 ‘확신’하는 것들을 동생에게 하듯, 자녀에게 하듯, 손녀에게 하듯 차분히 말하는 에세이집이다. 나는 ‘감사’가 좋았다. 절망에 빠진 윈프리가 마야 안젤루(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 마야 안젤루)에게 전화했을 때, 마야의 대답. 제 상황을 잘 모르셔서 그래요, 오프라의 울먹임에 대한 마야의 대답.
"You‘re saying thank-you," Maya said, "because your faith is so strong that you don‘t doubt that whatever the problem, you‘ll get through it. You‘re saying thank-you because you know that even in the eye of the storm, God has put a rainbow in the clouds. You‘re saying thank-you because you know there‘s no problem created that can compare to the Creator of all things. Say thank-you!"
So I did—and still do. (79)
기독교에서 ‘감사’는 무척 중요한 모토다. 명시적으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의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구절이 있고, 구체적으로는 기독교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서구 사회에서는 ‘감사’가 ‘성공’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테면 『타이탄의 도구들』에서도 ‘감사 일기’ 혹은 ‘감사한 일 3가지 이상을 적어보는 아침 일기’를 타이탄의 ‘도구’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감사’를 떠올릴 때면, 늘 정희진 선생님의 글이 생각난다. 여성주의자의 감사라니. 『페미니즘의 도전』, 2013년 개정증보판 머리말 중 일부다.
여성의 피해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열악한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사회에 고마운 마음을 지니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 모든 어려움을 돌파하는 데 여성주의 인식만큼 중요한 것이 감사하는 마음이다. 내 처지가 어떻든 간에, ‘지금, 여기의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양보의 결과다. 이것이 세상의 원리다. 그래도 나를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방해하지는 않는 사람들에게, 단 한사람일지도 나를 격려하는 사람에게, 그래도 변화한 ‘성 평등’의 현실 앞에, 이 체제에서도 세상과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살아가는 수많은 성실한 사람들에게, 육체적, 심리적 질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지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6쪽)
내 삶에 대한 책임을 나 혼자 오롯이 질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성의 없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를 외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절망의 순간에 관조적인 태도와 우아한 목소리로 ‘지금 너의 상황은 어쩔 수 없을 테니, 결국 네 인생은 어쩔 수 없어. 답이 없어’라는 대답 또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라면, 감사하는 쪽으로 간다. 감사하는 쪽으로. 힐러리 쪽으로. 정희진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