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세상은 왜 망하지 않을까?

‘이야...이게 안망하네’에 대한 사회학이야기

by 어보경

“이 빌어먹을 세상, 확 망해버려라”

누구나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해본 적 있지 않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늘 불합리한 규칙이 있고, 빌런처럼 굴며 남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이기적인 주변 사람들 때문에 힘이 빠지고, 배신을 당해 사람을 믿기 어려운 지경까지 온다. 빌런들 때문에 당장이라도 망할 것 같은 세상은 망하지 않고 꾸역꾸역 돌아간다.[절대 우리회사 얘기는 아니다.]


사회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세상은 왜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가?”라는 질문을 해왔다. 그 대답은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나뉜다. 하나는 기능주의(functionalism), 다른 하나는 갈등주의(conflict theory)다.


기능주의: 사회는 맞물린 톱니바퀴


기능주의는 사회를 거대한 기계나 몸에 비유한다. 몸이 심장, 폐, 위처럼 서로 다른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사회도 가족, 학교, 경제, 법 같은 제도가 서로 역할을 나눠 맡는다. 중요한 건 이 각각의 부분이 제 기능을 해야 사회 전체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사회가 유지되는 힘을 연대(solidarity)에서 찾았다. 전통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대부분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공유했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보다 집단이 더 강하게 작동하고, 다수와 다른 행동을 하면 금방 배척당하기도 했다. 뒤르켐은 이를 기계적 연대(mechanical solidarity)라고 불렀다. 마치 작은 마을에서 모두가 농사를 짓고 같은 관습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과 같다. 현대에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타트업 초기 멤버들처럼 모두가 같은 목표와 규칙을 공유하며 강한 일체감을 느끼는 경우가 그렇다.


반대로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역할은 점점 다양해지고 전문화된다. 이제는 모두가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가 다른 일을 맡고,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뒤르켐은 이런 모습을 유기적 연대(organic solidarity)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 수많은 직업군이 연결되어야 하고, 도시의 시민이 먹을 음식을 위해 농부와 유통업자가 함께 움직여야 하며, 회사의 각 부서가 서로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현대 사회의 연대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 필요하고, 서로 달라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회사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사팀이 사람을 뽑고, 재무팀이 돈을 관리하며, 연구팀이 미래를 준비한다. 각자의 역할이 다르지만 맞물려야 회사라는 기계가 돌아간다. 때로는 얄미운 상사조차 규칙을 지키게 만들며 조직을 안정시키는 기능을 한다.


갈등주의: 사회는 권력 다툼의 장


반대로 갈등주의는 사회를 협력보다 갈등으로 본다. 사회는 늘 불평등하고, 자원과 권력을 둘러싼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Karl Marx)는 사회를 구성하는 두 축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즉 자본가 계급(capitalist class)과노동자 계급(working class)으로 나누어 보았다. 그는 사회를 이루는 근본 구조가 이 두 계급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임금, 노동시간, 노동환경을 둘러싼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런 계급투쟁(class struggle)이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시간 일해야 했고, 결국 노동운동과 파업을 통해 노동법이 제정,개정되고 근로조건이 개선되었다. 오늘날에도 최저임금 인상 논란이나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 보장 문제는 마르크스의 시각에서 여전히 설명될 수 있는 갈등 구조다.


베버(Max Weber)는 마르크스의 관점을 인정하면서도, 갈등의 원인을 경제적 요인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 갈등이 지위(status), 권력(power), 가치(value) 등 여러 차원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어떤 직업은 소득은 낮아도 사회적 명망이 높을 수 있고(교사, 학자 등), 반대로 소득은 높아도 사회적 존경을 받지 못하는 직업도 있다. 이런 지위 차이가 갈등을 낳는다. 권력 차원에서도, 정치 권력이나 행정 권력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사회적 불만이 발생할 수 있다. 가치 차원에서는 서로 다른 집단이 중시하는 신념이나 생활방식이 충돌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커지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 세대와 종교간, 혹은 보수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가 부딪히는 모습이 바로 베버가 말한 갈등의 예다.


회사로 돌아가 보자. 경영진은 더 큰 이익을 원하고, 직원은 더 나은 대우를 원한다. 부서 간에는 예산 다툼이 벌어지고, 성과 중심 문화와 워라밸 문화가 충돌한다. 이런 갈등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변화를 만든다. 직원들의 불만이 누적돼야 복지 제도가 생기고, 부서 갈등이 심해져야 새로운 규정이 도입된다. 갈등은 불편하지만 사회를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개인이 겪는 갈등과 혼란


여기서 중요한 건, 이런 갈등과 연대가 단순히 사회 구조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개인도 사회의 한 부분이기에 비슷한 혼란을 겪는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경험, 내가 가진 신념과는 다른 조직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경험은 누구나 한다. 때로는 타인의 기대에 맞추느라 나 자신을 속이고, 때로는 나만 옳다고 주장하다가 관계를 잃기도 한다. 이런 갈등은 불편하고 괴롭지만, 결국 우리가 사회의 일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회학은 이런 순간에 두 가지 힌트를 준다. 기능주의적 관점에서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규칙이나 타인의 선택도 사회가 돌아가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걸 인정하면, 때로는 전체를 위해 양보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갈등주의적 관점에서는, 내가 불합리하다고 느낀 순간이 변화를 만들 기회일 수 있다고 말한다. 침묵하지 않고 갈등을 드러낼 때 조직과 사회는 조금씩 달라진다.


결국 중요한 건, 무조건 참는 것도, 무조건 싸우는 것도 답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로는 연대를 받아들이며 물러서야 하고, 때로는 갈등을 선택하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


빌어먹을 세상이 망하지 않는 이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연대가 사회를 붙잡아주고, 갈등이 사회를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각자 맡은 역할을 묵묵히 하고,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불만을 제기하며 개선을 이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출근하고, 욕하면서도 살아간다. 빌어먹을 세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불완전하게 유지되고, 불완전하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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