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첫 차, 아버지

부지런하지만 천천히 가는 것들

by 어보경

1.

조잘거리는 새 소리가 깊은 어둠의 끝을 알린다. 가을 새벽은 여름과 달리 게으르다. 별도 해도 없는, 캄캄하지도 밝지도 않은 하늘. 잠시 순찰차를 세운다. 잠도 깰 겸 창문을 반쯤 내린다. 겨울은 아직 멀었음에도 코끝에 와닿는 찬 기운은 벌써 겨울이다. 빠른 건가. 잠을 쫓으려 깊이 들이마신 숨이 날카롭게 폐를 찌른다. 벌써 추워지는구나. 아닌가. 새벽은 원래 추웠던가.


2.

첫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버스 정류장에 모여든다. 계절을 앞서는 새벽조차 여름을 이기지 못하는 걸까.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여름이나 가을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밤을 꼬박 새우고 맞이하는 새벽 공기에 으슬거리고 있노라면, 문득 이 놈의 새벽을 몇 번을 더 해야 지긋지긋한 야간근무가 끝날까 싶기도 하다. 보람, 돈, 가족, 안정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몸이 고되니 그냥 다 때려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퇴근하고 씻고 한숨 자면 없어질 생각이지만, 그때만큼은 간절하다.


아버지는 30년 가까이 공장을 다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명한 식품 회사의 큰 공장이었고, 아버지가 다니시는 내내 불이 꺼지지 않았다. 꺼지지 않는 기계를 돌리는건 수많은 아버지들의 몫이었다. 정년 퇴직 전까지 아버지는 교대근무를 하셨고, 집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내셨다. 내가 일어나기 전 출근하시고, 내가 잠들기 전 잠드셨다. 아버지도 새벽 첫차에 몸을 실으셨겠지.


나이가 들면서 밉거나 서운한 마음 대신 안쓰럽다는 생각이 커졌다. 아버지도 나와 같았을까. 아내와 아이를 두고 밤늦게 출근하는 마음. 조금만 더 놀아달라고 우는 아이를 떼놓고 문 밖에 나서는 마음. 가족과 다같이 둘러 앉아 밥먹은지는 언젠지 하는 생각, 주말을 아내와 아이 둘이 보내게 해야된다는 미안함. 이런저런 미안함과 죄책감, 책임감과 어쩔 수 없음들. 아버지도 느끼셨을까.


새벽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새벽 일을 나서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밤에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세상의 온갖 힘들고, 지저분하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하기 싫다는 생각도 마른 침 한 번에 꿀꺽 삼키고, 오늘도 해내는 사람들. 직업의 가치가 돈으로 치환되는 시대에, 그들의 일이 대단하지 않다고 치부될지언정, 대단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만큼은 부정되지 않았으면 싶다.


저마다의 책임감을 안고 첫차에 올라타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내일부터는 조금 더 따뜻하게 입어야겠다.


3.

정년 퇴직한 지금도 아버지가 다닌 공장은 아버지의 자부심이다. 회사를 다니며 우리 두 형제를 키워냈다는 고마움도 느껴지지만, 힘든 세상을 같이 이겨낸 전우처럼 느끼는게 더 큰 듯하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이제는 나보다 작아진 아버지에게서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큰 책임감이 보인다. 평생 내려놓지 못하실거다.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달을 바라보는 두 남자 (Two Men Contemplating the Moon),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c.18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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