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꾼의 야경(夜景)

말이 마음에 걸린다. 얻어 맞은 듯. 야경꾼의 야경은 늘 이런 식이다.

by 어보경

1.

지하철로 들어서는 계단, 사람이 누워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시간은 밤 열시 남짓 되었을까.

터덜터덜 걸어 내려간다. 지상도 지하도 아닌 어정쩡한 계단. 야경꾼의 예감은 대체로 정확하다. 역시나 노숙인이 계단을 침대 삼아 자고 있다.

지상에 추위가 엄습하면 지하는 그들의 도피처가 된다. 그렇다고 지하가 그들을 마냥 반겨주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반기지 않는 사람들의 심부름꾼이 나타났겠지.불이 꺼지지 않은 도시가 달갑지 않은건지, 한켠에 남겨둔 창피함을 감추기 위해선지 알수는 없으나, 그는 펴진 우산 속에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그'인지 '그녀'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는 모습으로.

사실 '그'인지 '그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동안 수 많은 '그'와 '그녀'를 쫓아냈다. 그들이 왜,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같은 것들은 사소해진지 오래다. 그저 계단을 계단의 용도로만 사용되도록 만드는 것이 오늘 내 첫 임무다.


"여기서 누워계시면 안됩니다. 나가세요."


2.

"밖이 이렇게 추운데, 나는 어떡하라고!"

노숙인이 고함쳤다. 삶의 의지일까, 그저 자리를 옮겨야 하는 짜증일까. 추우면 노숙인 쉼터를 가라고 안내한다. 이런저런 복지제도도 설명한다. 돌이켜보면 안내였을까. 안내로 받아들여졌을까. 감정 빠진 말이 천장에 부딪혀 흐트러졌다. 돌이켜 생각하는 자체가 마음을 좀 먹으므로, 생각하기를 멈추기로 한다.


그는 자리를 옮기면 옮겼지 노숙인 쉼터에 가지 않을 것이다. 백 번, 천 번 나가고 말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보금자리를 찾을 때까지. 그는 주섬주섬 박스와 몇 가지 짐을 챙겨 지상으로 쫓겨난다. 지상도 그들을 반기지 않는건 매 한가지다. 입구였던 곳이 출구가 되어 그를 내몬다.


느리적 걸어가는 그가 점이 되는 걸 확인하고, 다시 순찰차에 올라탄다.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그가 추운 밤을 피해 계단에 움크려 자는 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준 것일까. 그 피해가 없어졌다 치더라도 그의 생존과 견줄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그 사람을 생각하면 그렇지만, 그렇게 한 번, 두 번 느슨해지면 수 많은 노숙인들이 우리 지역으로 몰려들 것이다. 개인 대 개인의 감정을 접고 집단 대 집단의 감정을 장착한다.


보통, 사람들은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모두가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누군가는 누군가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해야한다. 자발적으로 나서서 사회 구성원의 안전을 지킨다는 자긍심과 사명감이 야경(자경대)의 시작이었다. 그 정신을 이어 받아 강건히 현장에 나서더라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 대한 연민, 복잡한 감정을 배제하기란 적응할래야 적응할 없는 일이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누군가는 더러운 것을 손에 묻혀야한다. 그렇기에 정상의 영역에 선 나는 비정상적 상황의 그들에게, 제도권으로 편입하라고, 아니면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매몰차게 통보한다. 이런 일에 그들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 사람의 서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내 마음 조차도 흔들 수 있다. 수 많은 경험으로 단단하게 다져진 머리가 심장을 차갑게 식힌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은 '현장'에선 사치에 가깝다. 이 시설은 누가 관리하는지, 사용 권한이 있는지, 이런 경우 보통 어떻게 처리해야 민원이 없을지 같은 현실적인 계산이 더 실용적이고, 효과적이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민과 동정을 애써 외면한다. 야멀차게 내뱉게 되는 단어들을 돌이켜보면,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 어떤 생각이 내 생각이었는지 도통 알 수 없게 되버렸다. 심지어 이런 자기혐오 조차 얼마가지 않으니까.


3.

야경꾼으로 생활한지 10년이 훌쩍 넘어갔다. 그 동안 인생의 굴곡들이 생겼기 때문인가, 마음이 약해졌다. 자기도 시민이라고 고함치는 그가 쉼터를 찾아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삶의 의지를 이어가기를, 제도권이든 아니든 갈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그저 바라본다.


"야경이라는 건 어둠이 밀려날 수 있는데 까지를 말하는 걸까. 이 도시는 사람들의 소원들로 빼곡해"라는 시 구절이 생각난다. 야경꾼이 보는 야경(夜景)은 항상 이런 식이다.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야경 (The Night Watch), 1642>


- 고선경, '소다젤과 샤워수'의 구절을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