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토요일 저녁, 가족들과 치킨을 먹으며 <유 퀴즈 온 더 블럭> 재방송을 보고 있었다. 김혜자 배우가 나온 편이었다.
"아유, 저 연세에 어쩜 저렇게 고울 수 있지?"
"엄마 아빠도 저거 본 적 있어요?"
"전원일기? 당연히 봤지."
"와, 옛날 사람 인증."
아들들과 열심히 먹고 떠들며 키득거리는 와중에 갑자기 일곱 살 막내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닭 다리를 한 손에 들고 흐느끼듯 울었다.
"왜 그래? 혀 깨물었어? 어디 부딪혔어?"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울어?"
"엄마도 저렇게 되는 거예요?"
"저렇게?"
"나중에 저렇게 할머니 되는 거예요?"
"응? 그렇지." (저렇게 예쁜 할머니 되면 소원이 없겠다 얘.)
딸아이는 다시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럼 나는 어떡해. 엄마가 할머니 되는 거 싫은데."
"엄마가 할머니 되면 소유는 엄마처럼 어른 되는 거지."
"할머니 돼서 엄마가 돌아가면 어떡해요."
"돌아가면? 아, 돌아가시면?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냐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거였구나. 이게 아이를 울게 만들었구나.
김혜자 배우가 젊었을 때의 화면과 현재의 모습이 엇갈리며 아이 마음의 무언가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 사람은 늙는 것, 늙으면 죽는 것. 그 진리는 인간의 정체성과 한 몸이기에 따로 배우지 않아도 그냥 본능적으로 알아지는 것인가 보다. 나는 그 진리를 벌써 깨달은 아이가 대견하고 귀여워 기름이 묻은 손가락을 휴지에 닦고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엄마가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지. 가서 하나님 옆에서 재미있게 놀다가 나중에 소유가 오면 둘이 같이 더 재미있게 노는 거야."
"엄마가 하늘나라 가면 우리 같이 있지 못하잖아요."
"소유가 아침에 유치원 가면 엄마랑 떨어져 있잖아. 그리고 유치원 끝나고 오면 엄마랑 다시 만나지? 그거랑 비슷해. 잠깐 떨어졌다 다시 만나는 거야."
아이는 그제야 좀 마음이 놓이는지 눈물을 닦고 다시 치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날 밤, 아이와 같이 침대에 누워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엄마, 그러면 엄마랑 나랑 하늘나라에서 언제 만나는 거예요?"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고 소유도 하늘나라에 오면 그때 만나는 거지."
"그러니까 그게 정확히 언제예요?"
음 그건... 그건 말이지 얘야...
"소유야, 사실 엄마도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라. 우린 아무도 몰라. 그건 하나님만 정확히 아셔."
이 말을 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이는 이후로 더 묻지는 않았다. 엄마에게 기대를 접은 건지, 대답을 받아들인 건지, 그냥 졸렸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품으로 파고들어 한동안 웅크려 있더니 잠이 들었다. 나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가슴이 먹먹했다. 아이가 안쓰럽고 가여워 오랫동안 등을 쓸어 주었다.
이 작은 아이가, 이제 시작이구나. 아직 이렇게 작은데, 등도 이렇게 작고 손도 이렇게 작은데, 벌써 시작이구나. 이 아이의 인생 동안 얼마나 많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을 품고 잠을 못 이룰까. 눈앞에 벌어진 일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 몰라 얼마나 많이 무서워 떨까. 답을 알려 달라고, 길을 보여 달라고 새벽마다 기도해도 답을 알지 못해 울어야 할 날이 얼마나 많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능자에게 돌아가 알 수 없는 섭리를 구하며 조용히 바라봐야 할 날은 또 얼마나 될까.
아이를 품에 안고 잠시, 나는 아이가 걱정과 고민 없이 평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깊은 길이 아니면 어떤가, 얕고 평탄한 길에서 천진난만하게 웃기만 하며 살면 좋겠다. 하지만 불가능한 길이고, 아이를 위한 길도 아님을 알고 있다. 내가 그랬듯, 모든 성장한 이들이 그랬듯 아이도 그런 길을 갈 것이다. 의문을 품고, 확실함을 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실패하고, 절망하며, 그렇게 성장해 갈 것이다.
안쓰럽고 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