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너희들에게 달아 줄게

by 플롯시

오늘은 큰아이의 중학교 예비소집일이다. 아이가 배정받은 중학교는 다행히 도보로 등교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중랑천을 건너고 동부간선도로 초입에 있는 건널목도 지나야 해서 좀 까다로웠다.


"유건아, 엄마랑 같이 가자."

"엄마 가도 돼요? 학생들만 오라고 써 있는데..."

"학교 앞까지만 같이 가지 뭐."

"음..."

"왜, 혼자 가고 싶어? 혼자 가도 돼."

"아니요. 같이 가요."


산책을 하거나 중랑천으로 자전거를 타러 갈 때 왔다갔다했던 길이었지만 늘 나나 아이 아빠와 함께였다. 이제 생각해 보니 한번도 아이 혼자 다리를 건너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이도 낯선 학교에 혼자 가는 길이 조금은 불안했던 모양이다.


맑고 차가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들을 내려다보며, 지난번에 농구하다 공을 빠뜨린 지점을 얘기하며 그렇게 중랑천을 건너 다리 끄트머리에 왔을 무렵 아이가 물었다.


"엄마, 학교 앞까지 가실 거예요?"


아이와 아이가 아닌 얼굴이 묘하게 섞인 듯한, 난처함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 아,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겠다.


"건널목까지만 갈게. 엄마는 안 건너고 너 혼자 건너가. 거기부터 학교까지는 갈 수 있지?"

"에이, 당연하죠."

아이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며칠 전보다 더 굵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건널목 앞에 도착했다.

"이따 차 조심해서 와. 이쪽저쪽 잘 보고."

"네."


아이는 건널목을 건너는 또 다른 아이들 속으로 합류했다. 검은 패딩들 사이 옅은 민트색 패딩의 아이를 보니 아이가 왜 며칠 전부터 검은색 패딩을 사달라고 했는지 알겠다.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새 교과서를 넣고 올 남색 백팩을 보았다. 건널목을 건너고 도로를 따라 걷다가 건물들에 가려 안 보이게 될 때까지 계속 바라보았다. 뒤돌아보면 손을 흔들까 말까, 다른 애들이 있으니 그냥 고개만 끄덕이는 게 낫겠지, 하며 쳐다봤지만 아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치!


어제는 둘째가 여섯 시가 다 되었는데 들어오지 않아 큰아이한테 나가 보라고 했다. 두 아이는 일곱 시가 넘어서야 들어왔다. 동생이 다른 아이들과 놀이터 옆에서 축구를 했는데, 골키퍼가 한 명 모자라 자기가 어쩔 수 없이 했다는 게 큰아이의 설명이었다. 다른 애들은 누구였는데? 내 물음에 아이는 멋쩍은 듯 말했다.


"온유(둘째 아이)랑 온유 친구 현우, 현우 동생, 현우 동생 친구들. 뭐 거의 1, 2학년 애들이었어요. 아이, 뭐 다 쪼끄만 애들이라 좀 쪽팔리긴 했는데, 그래도 내가 가르쳐 주기도 하고 택배차 오면 조심 시키기도 하고 그랬죠 뭐. 꼬마들이라 뭐 나에 비하면 훨씬 수준이 낮지만, 그래도 축구 교실 다니는 애들이라 꽤 하더라고요."


아하, 그래.


거기에 대고 둘째가 받아쳤다.

"엄마, 형, 골키퍼가 골을 네 골이나 넣었어요."


아하, 그렇게 열심히 했단 말이지.


"그냥 차면 들어가던데요 뭘."

아이는 민망한 듯 말하며 씻으러 들어갔다.


청소년기를 어린이와 어른의 중간 단계라고 한다면, 내 아이는 아직 청소년기도 아닌 '어린이와 청소년의 중간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부모의 보살핌이 있어야 안정되고 꼬마들과 공 차고 노는 게 재미있으면서도, 그런 자신의 모습이 좀 창피하기도 하고 검은 패딩을 입고 혼자 걸어야 좀 간지가 날 것만 같은 나이 열네 살. 이 시기도 길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한 학기가 지나기도 전에 훅, 진짜 청소년이 될지도.


이쯤에서 엄마는 아쉬워해야 하는데 나는 전혀 아쉽지가 않다. 뒤돌아보지 않는 민트 패딩 소년에게 '치' 하긴 했지만, 나도 가뿐한 마음으로 돌아서서 다시 다리를 건넜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목적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독립'이다. 아이가 독립해서 스스로 살아갈 날을 푯대로 삼아 우리들은 기저귀 갈기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는 그 푯대를 향해, 독립의 커리큘럼에 맞춰 잘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쉽지 않았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다리를 건너며, 아들과 봤던 오리들을 다시 내려다보며 오늘 아침의 경험을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글루틴 글감은 '희망'이다. 그런데 딱히 구체적인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아 다른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희망'이란 단어가 아까웠다. 차마 그 환하고 아름답고 부푼 단어를 그냥 묻어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 달아 주려고 한다. 내 아이의 남색 백팩에, 새 책으로 가득 채워질 그곳 한 귀퉁이에. 아침저녁으로 희망이 짤랑이는 지퍼를 여닫고, 희망을 달랑이며 등하교를 하길. 네 옆에 함께할 새 친구들도 희망을 여기저기 달고 함께 자라나길. 아들, 너의 중학교 생활을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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