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 스마트폰

by 플롯시

큰아이가 눈에 불을 켜고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있다. 아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도 나는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 평소에는 도서관에 가자고 해도 시큰둥하던 아이가 어제는 자기가 먼저 도서관에 가자고 나섰다. 그러더니 책을 딱 두 권만 빌렸다. 아홉 번째 책과 열 번째 책. 지금 읽는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열 번째 책까지 읽으면 아이는 결국 목적을 이룰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 줘야 한다.


아이가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을 사 달라고 조르기 시작한 건 작년 3월, 6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고부터였다. 나는 늘 스마트폰은 어른이 되어야 쓸 수 있다고 고지식하게 말했기에 그전까지는 아이도 별말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반에서 혼자만 스마트폰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때부터 조르기 시작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꼿꼿해지려는 자아도 한몫했으리라.


"지금 스마트폰이 왜 필요한데?"

"저만 없잖아요."

"너도 폰은 있잖아. 그리고 너만 스마트폰 없는 게 이상한 건가?"

"쪽팔리잖아요."

"너만 없고, 쪽팔리고, 이렇게 남하고 비교하는 거 말고 네가 진짜 필요한 이유가 뭐야?"

아이는 한참 말이 없다가 애들은 카톡으로 대화하고, 모둠별 숙제도 카톡으로 상의한다며 그게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문제는 집에 있는 태블릿 pc를 사용해 해결하기로 했다. 아이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더는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두 번째 고비는 2학기 초에 찾아왔다. 학교에 갔다 온 아이는 너무나 당당하게 스마트폰을 사야 한다고 했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보라고 한다며 당장 사 달라고 했다. 나는 그런 일이 흔하냐고 물었다.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 그럴 때마다 자기만 멀뚱멀뚱 있거나 친구 스마트폰을 빌려야 하는데 친구 데이터가 나가니 미안하다며 오늘 당장 사 달라는 식으로 말했다. 수업에 차질이 있다니 진짜 당장 사 줘야 하나,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조금 있으니 그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이 수업에 필수적인 준비물도 아닌데, 그걸로 아이가 수업 시간에 불편함을 느끼는 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은 원래 인터넷을 사용하는 수업은 컴퓨터실에 가서 하는데, 가끔 그때그때 검색해 보면 좋을 문제가 나오면 예기치 않게 스마트폰을 쓰게 된다고 하셨다. 아이가 스마트폰이 없는 건 이미 알고 계셨는데, 그날은 미처 신경을 못 써줬다며 다음부터는 컴퓨터실에서 태블릿 pc를 가져와 쓰게 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부모님과 약속한 것이니 그게 우선이라며, 아이한테 스마트폰을 굳이 살 필요는 없다고 전해달라고 하셨다. 나는 감사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어째 찝찝했다.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 줘야 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았다.


선생님과의 통화 내용을 아이에게 전하며 당장 살 필요는 없다고 말했지만, 아이는 실망한 얼굴로 그러면 도대체 언제 사냐고 물었다. 휴, 그때까지 내가 아이에게 했던 '어른이 되기 전에는 못 산다'는 말은 실은 내가 하면서도 나 자신도 못 믿었던 말이었다. 이제는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었다.


"일단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안돼."

"그럼 중학교 들어갈 때 사는 거예요?"

"그 전에 '스마트폰을 사야 하는 이유'를 A4 용지에 꽉 채워서 논리적으로 써 와 봐. 그 글이 엄마를 설득하면 그때 생각해 볼게."

"아유, 사 준다는 거야, 안 사 준다는 거야. 그런 걸 어떻게 써요."

"글자 크기는 12포인트야."


아이는 지독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포기한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디데이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늘 마음이 불편했다. 스마트폰을 갖고 싶은 아이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는 뭐 삐삐 갖고 싶던 시절이 없었나. 하지만 삐삐와 스마트폰은 차원이 달라도 너무나 다르기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도 이 대결이 끝날 때까지는 끝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12월 마지막 주, 아이의 이른 졸업식이 끝난 뒤 아이는 내게 A4 용지를 내밀었다. 졸업까지 한 마당에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출사표를 낸 것이다. 종이에는 스마트폰이 필요한 이유가 네 개의 소제목 아래 구구절절하게 적혀 있었다. 제목은 각각이었지만 내용은 하나였다.


친구들과 소통이 제한되니 불편하다.

나만 없으니 소외감을 느낀다.

친구들이 자신이 스마트폰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는 걸 보면 부끄럽다.

2g폰을 쓰는 것이 창피해 아예 폰이 없다고 의도치 않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


학기 초와 똑같이 스마트폰이 나만 없고 그래서 창피하다는 게 골자였다. 그 아랫부분에는 스마트폰을 사게 되면 지킬 약속까지 적어 놓았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게임 안 깔기, 해로운 것 안 보기, 스마트폰 한 시간 이상 안 하기, 공부할 때는 안 만지기, 밤 11시 이후에는 안 보기, 소중히 다루기.


스마트폰이 필요한 이유가 그닥 논리적이지도 않고, 여섯 가지 약속들을 과연 이 아이가 지킬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지만 아이의 진심과 스마트폰을 향한 애절함이 가슴 깊이 느껴졌기에 나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었다. 아이 아빠도 이제 사 주라고 하고, 글을 본 친정엄마는 졸업 선물로 스마트폰을 사 주라며 거금까지 주셨다. 하지만 나는 굴복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늦추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경악했던 조건을 또 하나 내걸고 말았다.


"엄마가 분명히 말했잖아. 사 준다는 게 아니라, 그때 생각해 본다고.(지금 쓰면서 생각해도 좀 악랄하다)"

"에?"

"그래, 엄마도 네가 이렇게 글로 쓴 거 보니 진심이 느껴져."

"그럼 내일 사러 가요?"

"응, 일단 사 주긴 사 줄 거야. 그건 확실해. 그런데 이제 중학교 입학할 때까지 시간이 두 달이나 남았잖아. 엄마는 네가 스마트폰을 사기 전에 그 두 달 동안 독서의 즐거움을 먼저 맛봤으면 좋겠어."

"책 읽으라구요?"

"맞아. 좀 치사하겠지만 책 열 권 읽으면 엄마가 두말도 않고 다음 날 바로 사러 갈게."

"아, 엄마!"

"빨리 사고 싶으면 열심히 읽으면 되잖아."

"하! 확인도 해요?"

"아니, 감상문 같은 거 안 써도 되고 네가 읽고 싶은 거 읽으면 돼. 엄마한테 제목만 가르쳐 주고. 만화책은 안돼."


이렇게 해서 3월이 코앞인 지금, 아이는 입학 전에 스마트폰을 사려고 《프랑켄슈타인》을 열심히 읽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어제 도서관에 가면서 말했다.

"아, 이제 두 권만 읽으면 되네. 그런데 엄마, 열 권 다 끝나도 이제 책은 계속 읽을 것 같아요."

응 그러니? 엄마는 네 말이 안 믿겨지네. 나는 내 불신이 맞았다는 걸 확인했다. 한 번에 일곱 권까지 빌릴 수 있다고 말했지만 아들은 딱 두 권만 골랐으니까.


아이가 책을 읽으며 그 속에서 기쁨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그 기쁨이 두 달 안에, 책 열 권만에 생기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기간이 독서를 즐기게 되는 작은 씨앗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열 권 중에 한 권은 재미있는 책을 만나지 않을까, 그러면 스마트폰이 주는 삐까뻔쩍한 재미를 알게 되어도 또 다른 재미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소심한 기대가 있었을 뿐이다.


나는 왜 이렇게 스마트폰으로 향하는 아이의 뒷자락을 무식하고 고지식하게 붙들고 있나? 왜 이렇게 스마트폰을 무서워 하나? 내가 스마트폰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편리하고, 유용하고, 다른 이의 생각에 접근하기 쉽고, 때로는 그 생각들이 진지하고 지혜로울지라도, 스마트폰의 이점이 백 가지일지라도, 그것의 해로운 점은 백 한 가지 이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스마트폰을 써 온 10년이 넘는 세월을 돌아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더 물질적으로, 더 즉흥적으로, 더 미시적으로 변해 온 시간이었던 것 같다. 쓸데없는 기사나 쇼핑 거리에 시간을 쓰고 후회한 게 몇 번이며, 전체적인 그림도 모르면서 여기저기 깔린 남의 이런저런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 게 몇 번이었던가.


뭐 나의 경험을 차치하고라도 이제 고작 열네 살이 되는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기사와 댓글,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사진과 영상, 보여 주고 싶지 않은 편견과 거짓 정보들이 인터넷 세계 안에는 깔려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손바닥 안에서, 오롯이 나 혼자 볼 수 있게 해 주는 게 스마트폰이다. 주위에는 아이의 게임과 유튜브 중독으로 골머리를 앓는 부모들이 한둘이 아니다.


시대가 그런 시대고 세대가 그런 세대라고, 모든 아이가 스마트폰을 쓴다고, 심지어 초등학교 3학년만 돼도 아이폰으로 바꿔 달라는 시대라고 그냥 순응해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내 아이는 세대의 책임이 아니라 내 책임이니까, 가르치고 보호해야 할 의무는 일단 내 의무니까.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교육마저 스마트 기기에 너무 많이 의존해 버리게 된 건 아닐까, 세대를 이끌어야 할 교육이 너무 빨리 세대에 순응해 버린 건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이제 아이가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 새로운 대결이 시작된다. 일일이 간섭하고 제한을 둘 수도 없고, 그게 장기적으로 끌 수 있는 방법도 아닐 것이다. 본격적으로 사춘기가 시작될 아이와 어떻게 사이좋게 스마트폰에 대해 이야기하고, 덜 해롭고 더 이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일단은 아이의 다짐문을 냉장고에 떡하니 붙여 놓았다. 아이가 손님이 와서 보면 창피하다고 떼 놓으라고 성화였지만, 아니다, 억지로라도 상기시켜야지.


아이는 이제야 드디어 편지 부분이 끝나고 본 이야기로 들어간다며 한숨을 쉬었다. 부디 아홉 번째 책을 재미있게 읽기를, 소개 글에 있는 인간의 악한 본성과 소외감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기를, 그게 안되면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대결을 보며 긴장감이라도 맛보기를, 그게 안되면 부디 공포심이라도 느끼기를 바라 본다. 그 녀석과 만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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