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혼자 집에 있다. 코로나로 어제까지 자가격리를 했던 둘째 아이가 오늘부터 등교를 했기 때문이다. 거의 보름 만에 당연했던 오전 일상으로 돌아왔다. 보름 간의 모든 계획들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비일상의 시작은 내 생일 점심이었다.
4월 19일, 내 생일에 맞춰 남편이 반차를 냈다. 내가 점심시간에 맞춰 남편 회사 앞으로 가면 같이 창덕궁을 돌고, 미리 정해 둔 베트남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청량리 롯데백화점에서 남편이 생일 선물로 운동화를 사 주기로 한 오후 일정이었다. 날씨는 너무 좋았고 하늘은 청명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세 번 탔는데, 세 번 다 30초도 기다리지 않고 딱딱 맞게 갈아탔다. '뭐지? 어떻게 이런 일이...' 맑은 날씨와 내 움직임에 딱 맞게 도착하는 버스와 지하철조차 생일 선물인 것 같아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오르면서도 한 구석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하루 운의 평균을 맞추려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었다.
처음은 좋았다. 시원한 자몽 주스를 한 잔 들고 남편과 낙선재를 거닐다 서로 사진도 찍어 주고, 오랜만에 데이트 기분을 냈다. 서순라길 골목의 베트남 식당 의자에도 무사히 안착했다. 한창 반쎄오를 집어 접시에 담으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슬기반 선생님. 느낌이 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막내 딸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점심 먹은 것을 다 토했다고 했다. 열이 나서 얼굴이 발갛고, 힘이 없어서 교무실 침대에 누워 있다고 했다. 유치원에 있는 해열제를 먹여도 되냐고 물어봤다.
"네네 선생님. 제가 지금 밖에 나와 있어서 바로는 못 가고 한 시간쯤 후에 도착할 것 같아요."
나는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빨리 먹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오후 일정은 끝, 백화점 쇼핑은 날아갔다.
사실 아침부터 아이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다. 배가 아프고 몸이 춥다고 했다. 유치원에 못 갈 것 같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열도 없었다. 나는 아침에 창문을 열어 놓아서 추운 거라고 닫으면 괜찮을 거라고 말하며 창문을 닫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창문을 닫고 아이에게 옷을 입혀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날은 남편과 데이트를 하는 날이었으니. 남편과 계획한 일정들을 함께하며 내 생일을 자축해야 했으니. 날씨와 버스와 지하철에 좋은 운을 다 쓴 것만 같은 꺼림칙한 느낌은 아이의 몸 상태에 대한 불안함과 미안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이는 독감이었다. 5일 동안은 타미플루를 먹으며 격리를 해야 했다. 이틀 뒤에 유치원에서 생일 파티가 있었다. 같은 반에서 4월 생일자는 아이 혼자라 '나 주인공이야' 하는 화려한 드레스도 입기로 했었다. 그리고 그날은 내 친한 친구들이 오전에 놀러 오기로 한 달 전부터 계획한 날이기도 했다. 다 취소되었다. 특히나 유치원 마지막 생일 파티였기에 아이도 나도 무척 속상해했다.
주말에는 나도 오슬오슬 추웠다. 토요일에 병원에 가니 독감이었다. 계속 토하는 아이를 뒤치다꺼리하고 옆에서 재웠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독감 환자가 두 명이라 주일에는 온 식구가 교회에 못 갔다. 월요일까지 쉬고 화요일에 딸아이를 등원 시키려고 깨울 때였다. 둘째 아이가 나를 불렀다.
"엄마, 저 아무래도 독감이나 코로나나 뭐 하나는 걸린 것 같은데요?"
몸에 힘이 없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전날 반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둘째의 말을 듣고 자가키트로 검사하니 코로나 양성이 나왔다. 첫째는 다행히 음성이 나와 등교를 했다. 나는 독감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막내가 또 코로나에 걸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원을 시키지 않고 둘째와 막내를 데리고 있기로 했다. 7일간의 자가격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 주 금요일에는 둘째 아이의 체험학습이 있었다. 버스에서 같이 앉을 짝을 정하고 비용까지 다 낸 체험학습에 갈 수 없게 되었다. 또 토요일에는 교회 전도회 단합대회가 있었다. 온 가족 다 같이 가서 윷놀이도 하고 족구도 하려 했는데 그 또한 갈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 3년 동안 못 만났던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려 했던 약속도 날아가 버렸다. 2주 동안 모든 행사, 모든 약속, 모든 계획이 취소되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즐겁게 기다렸던 일들이 허공에 흩어져버리고 말자 우리 모두 시무룩해졌다. 나는 시무룩하게 저녁밥상을 차리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코로나 확진자인 둘째는 거실 구석에서 쟁반에 놓인 밥과 반찬을 먹고 있다. 큰아이와 막내는 반찬이 놓인 식탁에 마주 앉고 있다. 이제 막 퇴근한 남편은 안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있다. 나는 큰솥에 끓인 육개장을 대접에 푸고 있다. 그때 알았다. 진짜 시무룩해질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짜 시무룩해질 일은, 아니 진짜 엉망진창인 일은 우리 다섯 중에 한 명이라도 이 자리에 없게 되는 상황일 것이다. 어떤 기대가 사라지고, 어떤 계획이 증발되고, 어떤 비일상이 쑥 들어오게 된다 해도, 가족이 여전히 함께 살며 이 집안에서 웃고 소리 지르는 날들이 계속되기만 하면 그 또한 만족스럽고 감사한 삶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게 전부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다섯 명이 함께라면 그 자체로, 그 또한 우리만의 새로운 일상이었다.
뭔가 많이 잃은 것 같은 보름이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잃지 않은 보름이었다. 오히려 함께 하는 시간들을 얻었노라고 하면 너무 닭살이려나. 우리 부부가 이 품 안의 자식들을 끼고 살던, 독감과 코로나로 품 안에 더 꼭꼭 끼고 지내던 이 시간들을 그리워할 날이 분명 오겠지. 몇 년 후 그리워할 시간을 지금 살고 있다고, 아들들은 학교에 가고 딸아이는 서울숲으로 봄소풍을 가서 겸연쩍게도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시간에, 나는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