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학교에서 수련회를 갔다. 강화도의 유스호스텔에서 2박 3일을 지내고 온다. 전에도 교회 여름성경학교에 가서 한두 밤 자고 온 적은 있었다. 장소는 내가 어릴 때부터 다녔던 교회였고, 함께하는 아이들과 선생님도 오랜 시간 함께한 친밀한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신앙 안에서의 모임이었기에 아무 염려 없이, 오히려 잠깐 동안의 육아 해방을 기뻐하며 보내곤 했더랬다.
얼굴도 모르는 학교 선생님들과 교관들의 보호 아래로, 마찬가지로 내가 한 번도 못 만나 본 200명의 중학생 남자아이들 속으로 아이를 보내는 건 처음이었다. 들뜬 얼굴로 가정통신문을 내미는 아이를 보며 든 생각은 '아, 안 보내고 싶은데...'였다. 아이를 2박 3일 동안 '나의 보호'에서 떨어뜨려 놓는다 생각하니 내가 이제껏 살면서 뉴스로 본 오만가지 사건 사고들이 와락 달려들었다.
버스 전복 사건, 숙소 화재 사건, 지붕 붕괴 사건, 게다가 배도 타지 않는데 기어이 세월호 사건까지 떠올리며 혹시나 나와 떨어진 상태에서 아이가 두려운 사건을 겪지나 않을지 걱정하다 이게 무슨 바보짓인가 머리를 세게 저었다. 쓸데없이 불안을 끌어모으는 어리석음은 아이가 하나, 둘, 셋 늘어갈 때마다 더 커지는 것 같다.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무슨 문제는 없을지도 걱정되었다. 아이가 친구 관계를 어려워하지는 않았지만, 하교 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거나 친구 집에 가서 놀거나 해본 적은 없었다. 혹시나 소외되거나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닐지, 알지 않아도 좋은 것들을 알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학교에서 나눠 준 수련활동 계획서에 '성폭력 예방 방법'이 앞뒤로 빽빽하게 있는 게 나의 불안감을 더 키웠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도 이런 위험이 있으니 이렇게 장황하게 교육하는 게 아니겠는가.
몸이 다칠까, 하는 것도 물론 여러 걱정들 중 하나였다. 위험하게 놀지 말아라, 몸싸움하지 말아라, 괜히 자존심 세우지 말고 못하는 건 못한다고 말해라, 며칠 전부터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도 지겨운 건지 아이는 호기롭게 '목숨 걸고 놀고 오겠다'는 소리를 내뱉어 나한테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조금만 과식하면 속이 안 좋고 배가 아픈 것도, 몇 년 전에 아이가 발작했던 무서운 장면도 나를 계속 걱정의 잔에 잠겨 있게 했다.
아이는 나의 걱정을 귓등으로 흘리며 배낭과 간식 가방을 짊어지고 오늘 아침 발걸음도 가볍게 떠났다. 글을 쓰는 중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았고, 지금쯤이면 호스텔 식당에서 친구들과 킬킬거리며 첫 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는 내 쓸데없는, 꼭 쓸데없어야만 하는 걱정과 상관없이 즐거운 2박 3일을 보내고 올 것이다. 내가 그랬고, 내 남편이 그랬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 맛있게 먹고, 혼신의 힘을 다해 조별 게임을 하고, 친구들 개그에 박수 치며 웃고, 때로는 힘들어서 짜증도 내지만 곧 잊어버리고, 그렇게 중학교 1학년 첫 수련회를 마치고 올 것이다.
나로서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 내가 없어도 아이는 즐겁고 무엇이든 잘 해낼 거라는 믿음, 그 믿음으로 멀어진 거리에 애달파하지 않는 것. 그 '거리'가 어떤 거리라 할지라도.
아이를 향한 걱정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은 나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내 아이보다 훨씬 겁 많고, 소심하고, 무력했던 나도 길을 걸어왔다. 슬픈 밤도, 무안했던 순간도, 부끄러운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가족의 무심한 듯한 응원과, 멋모르지만 열심이었던 교회 생활과, 책에서 만난 기쁨과 꿈으로 십 대를 지났던 것 같다. 나 같은 사람도 지나온 길을 아이가 못 지날까. 고작 나 같은 사람에게도 부어진 은혜가 아이에게는 안 부어질까.
아들, 부디 재미있게 놀다 오길. 친구들과 진심으로 친해지길. 한 집 또 한 집, 엄마들의 믿음과 바람이 83.4km 떨어진 아들들 200명에게 날아가 모두 함께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길. 너희들에게 씌워진 부정적인 프레임과 걱정들은 잊고, 실은 그보다 훨씬 큰 순한 에너지와 반짝거리는 유쾌함에 기대어 우리들도 편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을게. 수요일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