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는 포천 아트밸리에 다녀왔다. 석가탄신일 연휴 내내 비가 온다는 뉴스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 봄 내내 어디라도 가고 싶었는데 가까운 곳도 가지 못해 답답한 상태였다. 비가 온다면 우산을 쓰고라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상의를 해서 장소를 정하고, 전날 아이들에게도 내일 나들이를 간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낮에 먹을 과일과 음료를 싸 놓고, 계란밥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얼른 밥 먹고 준비하자."
첫째가 나오며 묻는다.
"도대체 어디 가는 건데요? 가서 뭐 할 건데요?"
가기 싫다는 시그널이다. 그 시그널을 둘째가 대놓고 말로 내뱉는다.
"안 가면 안 돼요? 아, 가기 싫다."
단번에 내 마음이 뾰족해졌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 말을 무시하고 빨리 준비나 하라고 했을 텐데, 나도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밖에 나가서까지 감정싸움을 하기가 싫었다.
"가기 싫은 사람은 가지 마. 엄마 오랜만에 힐링하러 나가는 거야. 가서 계속 입 나와 있을 거면 그냥 가지 마. 엄마 아빠랑 막내만 갔다 올게."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설 줄 알았다. 하지만 아침밥을 먹고 난 첫째가 아주 정중한 말투로 말했다.
"엄마, 그럼 저는 그냥 집에서 학원 숙제나 하고 있을게요."
"그래, 그럼. 너는?"
"저도 형이랑 있을게요."
그래서 우리 셋만 집에서 나왔다. 특별한 이유 없이, 오직 아이들이 이제는 엄마 아빠를 따라나서는 게 싫을 나이가 되었다는 이유로 다섯이 함께 놀러가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주차장에서 차에 올라타는데 찔끔 눈물까지 나왔다. 휴일에 어디를 놀러가든 항상 다섯이 함께였는데, 이제는 그 당연했던 시절이 끝났다는 생각에 슬픈 마음이 들었다. 내가 그 마음을 남편에게 이야기하자 남편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했다.
"나는 하나도 안 그런데. 이제 많이 컸잖아. 애들 없으니 오히려 우리 셋이 심플하니 좋구먼."
그래도 막내는 나와 비슷한 마음인지 이렇게 중얼거렸다.
"오빠들이 있어야 재미있는데."
"그러게 말이야, 왜 오빠들은 안 가나 몰라."
마음이 같은 우리는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두 남자를 생각했다.
하지만 차가 출발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아 나는 남편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자리가 널찍해서 편했던 것이다. 5인승 차에 5인이 탈 수는 있지만 편하지는 않다. 이미 두 아들은 나보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덩치들이었다. 뒷자리에 나와 일곱 살 막내딸만 앉으니 여기저기가 빈 공간이다.
"확실히 편하긴 하네."
게다가 늘 시끄럽던 아들들이었다. 이 음악을 트네 마네, 말을 왜 그렇게 하네 마네,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첫째는 스포츠 얘기를 끊임없이 하고, 둘째는 막내를 끊임없이 놀렸다. 그러면 막내는 또 돌고래 소리로 악을 썼다. 그 모든 소음이 없었다. 막내는 조용히 춘식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고 나는 도로 옆에 피어 있는 장미꽃들을 보았다. 스트레스 지수가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아트밸리에 도착해 입장권과 모노레일 티켓을 사고 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각자 우산을 하나씩 들고 입장했다. 속살을 드러낸 웅장한 바위들을 우러러보고 돌 파낸 자리를 채운 검푸른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야외에 전시해 둔 특이한 조형물들을 구경하고 비 내리는 날 특유의 풀 냄새와 나무 냄새를 들이마시며 걸었다. 비를 피해 정자 지붕 아래 셋이 모여 앉아 매점에서 사 온 꼬깔콘과 월드콘을 나눠먹기도 했다.
막내는 천문과학관에서 본 별자리 영상도 좋아했지만, 아이가 무엇보다 즐거워했던 건 올챙이 잡기였다. 천문과학관 앞 얕은 개울에는 색이 고운 청개구리 몇 마리와 그보다 몇 십 배는 많은 올챙이들이 있었다. 아이는 아빠를 따라 웅덩이에 손을 넣어 미끈거리는 올챙이를 잡아 올렸다 다시 물에 놓아줬다 하며 개울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이는 아빠와 오랫동안 쪼그려 앉아 올챙이를 쫓았고 나는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으며 또 즐거워했다.
우리 셋은 아트밸리를 천천히 구경하고 나와 근처 쌈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집에 있는 아들들은 뭘 먹고 있나 궁금하던 차에 카톡으로 사진 두 개가 날아왔다. 냉면 하나 쫄면 하나, 냉장고에 있던 간편 식품들을 저희들이 끓여 놓은 모습이었다.
"아이고, 지들끼리도 잘 끓여 먹네."
"그러게,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설거지까지 싹 해 놓았다. 숙제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tv도 보고, 인터넷도 하고... 할 것은 하고 즐길 것은 즐겼다. 둘째는 '왜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하며 아쉬운 기색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러게, 너희들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좀 더 줄 걸, 쩝.
사실 두 아들이 빠진 나들이, 생각보다 좋았다. 세 명 사이에서 교통정리할 필요 없이 애교 많은 막내딸한테만 집중할 수 있어 마음이 여유로웠다. 소리칠 일도 없었다. 그저 아이의 손을 잡고 가만가만 얘기하며 걸을 수 있었다. 식구가 적으니 화장실이니 뭐니 서로를 기다릴 일이 적었고, 성인 두 명 분인 아들들이 빠지니 입장료나 밥값이 확 줄었다. 자연도 좋고 풍경도 좋았다. 남편은 근래에 했던 나들이 중 가장 좋았단다.
아마 이제 몇 년 간은 이렇게 셋만 다닐 때가 많을 것 같다. 셋이 즐겁게 추억할 장소가 두 아들의 기억에는 없을 것이고, 그 반대가 될 때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성장의 흐름이고 가정사의 이치인 걸. 서로 공유하는 경험이 줄어든다 해도, 아무쪼록 너희들의 경험과 우리들의 경험이 각각 즐겁고 안전하기만을.
다음 날 친구에게 전날의 나들이에 대해 말하니 이런 말을 한다.
"책에서 봤는데, 사춘기 때는 애들은 애들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즐거워야 한대. 같이 말고 각자!"
14년 동안 부단히 아이들과 한 덩어리가 되려고 애썼는데, 30년 동안 '나'로 살던 나를 죽여 그들과 한 몸이 되려고 몸부림쳤는데, 이제 다시 '각자'로 돌아갈 여정을 시작해야 하다니. 나에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좋고 나쁜 게 어디 있을까, 그냥 순리일 뿐. 이왕 시작된 새로운 여정이니 오늘처럼 좋은 점들을 손꼽아 보며 덩어리에서 분리되는 연습을 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