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다고 말하는 너의 옆에서

by 플롯시

일곱 살 셋째가 눈 수술을 했다. 간헐성 외사시가 있어 작년 초부터 대학병원에 다니던 중이었다. 지난 정기검진 때 각도가 점점 벌어지고 있으니 수술을 하자는 말에 10월 말로 수술 날짜를 잡았는데 취소 자리가 났다며 전화가 왔다. 바로 다음 주였기에 좀 갑작스러웠지만, 남편을 따라 해외에 나갈 수도 있는 상황인지라 어차피 수술하려면 빨리 하는 게 나았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나흘 뒤 아이와 함께 입원했다.


입원을 하고도 환자복 차림으로 생기발랄하게 돌아다니고, 저녁밥도 꿀떡꿀떡 맛있게 먹던 아이는 손등에 수액 바늘을 꽂자 달라졌다. 그제서야 내일 수술이 걱정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다가도 '엄마, 무서워', 보드게임을 하다가도 '무서워', 가져온 사탕과 젤리를 줘도 고개를 저으며 '무서워'를 중얼거렸다.


"맞아, 무서울 거야. 처음 하는 수술이니 소유가 무서운 게 당연해."

"무서워 엄마."

"그런데 소유가 생각한 것보다 엄청 금방 끝나. 눈 감고 조금 자다가 깨면 수술이 끝나 있을 거야."

"안 아파?"

"소유는 자느라고 아픈 것도 몰라. 수술 끝나면 두 눈이 가려져 있어 좀 답답할 텐데 조금 있다가 그것도 떼어줄 거니 걱정하지 마."

"집에 가고 싶어."

"수술 금방 받고 빨리 집에 가자. 소유는 잘 할 수 있어. 얼마나 씩씩했는지 집에 가서 오빠들한테 다 말해 줄게."


하지만 아이는 걱정이 되어서 그런지, 낯선 병실이 불편해서 그런지 밤새 뒤척였다. 그러다 일어나 앉아 집에 가고 싶다며 울먹였다. 아이를 다독거리다 누웠지만, 나도 딱딱한 보호자 침대가 불편해서 덩달아 뒤척였다. 그러다 병실을 드나드는 간호사들 소리에 완전히 깨어 새벽부터 말똥거리다 보니 아침이 되었다. 수술은 8시 반, 첫 번째 순서였다.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 위에서부터 아이는 눈물바람이었다. 크게 울지도 않고 작게 흐느끼며 앓는 소리처럼 '무서워'를 반복했다.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는 동안 대여섯 명의 환자들이 계속 들어왔다. 아이는 잠깐씩 다른 환자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무섭다고 말했다. 하늘색 캡을 쓰고 눈 주위가 벌게진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를 보니 안쓰러운 마음에 나까지 울컥했다. 나는 다시 아이를 다독였다. 금방 끝날 거야, 아프지도 않아, 그냥 잠깐 자고 일어나는 거야, 소유 깰 때는 엄마가 옆에 있을 거야, 우리 소유는 잘 할 수 있어... 지난밤 했던 말과 거의 비슷한 말들을 속삭이다 문득, 이 얼마나 공허한 말인가 생각했다.


나는 엄마다. 나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아이를 위로하며 다독였다. 어린 나이에 수술을 받는 것도 안타깝고, 무서워하고 불안해하는 모습도 안쓰러웠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이의 두려움이 내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엄마라도, 처음 겪는 수술 앞에서 무서워 떨고 두려워 우는 아이의 거대한 공포를 온전히 나의 공포인 양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저 경험상 짐작하고,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 애쓸 뿐.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게 아니기에, 내 눈에 메스가 들어오는 게 아니기에, 내 육체가 겪는 고통이나 불편이 아니기에.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서 서글프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도, 가깝고 더 가깝고 더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나 자체가 될 수는 없다. 특별히 몸에 관해서는 더 그렇다. 나도 그랬다. 5년 전 안면마비로 내 오른쪽 얼굴이 굳어졌을 때 참 고통스러웠다. 모든 통증과 일상의 불편함이 사라지고 나서는 더욱 고통스러웠다. 귀 밑 통증도 없어지고, 눈도 감기고, 가글도 하게 되었지만 내 얼굴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기능은 회복됐지만 근육은 회복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겪은 불편함은 없어졌지만, 거울로 내 얼굴을 보는 비참함은 그대로였다. 후유증으로 내 얼굴은 죽을 때까지 비대칭에 부자연스러운 상태가 되어 버렸다.


가족과 친정 식구들, 주변 친구들의 위로와 관심의 말들, 그 어느 것도 내 마음에 와서 닿지 못했다. 내 얼굴에 대해 밝고 긍정적으로 말해도, 걱정스럽게 말해도, 실질적인 치료법들을 제시해도, 내 얼굴에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해도, 그 모든 반응들이 내게는 상처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가장 가까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비하면 이렇게 회복된 것만도 감사하다는 말도, 자기가 보기에는 별로 어색하지 않다는 말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알아채지 못할 거라는 말도 오히려 다 상처가 되었다. 어쨌든 내 얼굴이 마비 전과 같아지지는 않을 거라는 명확한 사실이 밑에 깔려 있는 얘기였으니 말이다. 내 육체를 치고 간 질병의 흔적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었고, 그로 인해 겪어야 할 마음의 고통도 오로지 나의 것이었다.


어디 이뿐이겠냐. 살아가다 보면 오로지 혼자 겪고 감내해야 할 고통과 두려움과 슬픔이 얼마나 많을까. 함께 나누고 함께 짊어질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옆에서 아무리 최선을 다해 나눠지려 동동거려도 끝내 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 진실을 이미 모르진 않았으나, 일곱 살 난 내 딸의 두려움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었던 어미의 심정이 되고 보니 그 진실이 더 서글프게 다가온다.


사실 난 아이가 수술을 받는 동안 뭐라도 좀 먹을 생각이었다. 수술 후 오후까지 금식해야 하는 아이 옆에 계속 붙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쫄쫄 굶을 판이었다. 관련 카페에서도 그 시간이 엄마가 밥을 먹을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이라며 안 먹고 싶어도 일단 욱여넣으라고 했다. 사실 사시 수술이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기에, 생명과 관련된 수술도 아니고 잘못되는 케이스도 거의 없기에 보호자들이 밥도 먹고 나처럼 별 걱정 없이 '금방 끝날 거야'라고 간단히 토닥일 수도 있었으리라. 위험한 수술이었으면 아이의 두려움에 나의 두려움이 좀 더 근접할 수 있었을까. 도리도리. 아, 아이의 두려움에 공감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엄청 다행인 거구나. 일단은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내 아이 이름 옆에 '수술 중'이라고 써 있 전광판을 보니 밥까지는 못 먹을 것 같아 그 아래 앉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했던 생각들을 지금 쓰고 있는 것이다. 나는 홀로 감당해야 할 두려움들에 대해 생각했고, 아이의 두려움을 곱씹다 내가 겪었던 고통을 떠올렸다. 그리고 부모도, 남편도 다 알 수 없는 고통을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한 분에 대해 생각했다. 내 세 아이들에게 다가올 많은 험산들, 나도 남편도 어찌할 수 없는 오롯이 그 아이들의 것일 고통을 생각하며 그 순간에 꼭 아이들이 그 마음을 온전히 아시는 그분을 기억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는 사이 수술이 끝났고 '신소유 환자 보호자'를 부르는 소리에 회복실로 들어갔다.


수술 한 시간, 회복실 40분, 다시 병실. 수술 직후 마취가 풀리며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30분 자고 일어나니 평온해졌다. 한쪽 거즈를 떼니 충혈된 눈과 퉁퉁 부은 눈두덩이가 보였다. 지친 얼굴이었지만 불안함은 보이지 않았다.


"수술 다 끝났어. 엄마 말대로 진짜 금방이지?"

"아니, 긴 것 같은데."

"하고 나니까 어때? 수술 별로 무섭지도 않지?"

"아니, 정말 무서웠어."

"눈도 많이 안 아프지?"

"그런데 불편해."

"이제 안 무섭지?"

"……."

"응?"

"엄마, 나 배고파."


그래 그래, 엄마의 진심 가득했던 말이 네게는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구나. 그래도 다 끝난 걸 아는 아이의 얼굴, 무덤덤하고 지루한 듯한 얼굴, 긴장이 사라진 아이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물론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도 더해져 말이다.


모든 어려움이 이미 지나갔음을 아는 아이의 얼굴, 좀 지친 듯 하지만 한결 편안해지고 성숙해진 얼굴. 그 얼굴을 내가 사는 동안 몇 번이나 보게 될까. 물론 그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어려움 가운데 서 있는 아이의 불안하고 상기된 얼굴도 봐야 하리라. 그 얼굴을 잘 봐 주는 것, 그게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겠지. 이 말 저 말 해 봐야 가 닿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다 알지도 못할 것이다. 내 진심이 별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옆에 꼭 붙어서, 보기 힘들다고 눈 돌리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그 얼굴을 잘 봐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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