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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후 Mar 07. 2020

스페인으로 돌아가다

Vuelvo a Madrid

한참을 잤다 생각했는데, 아직 9시간의 비행이 남아있다. 혼자 하는 장기 여행의 시작은 담담하다. 비행기를 결제했을 때의 설렘은 사라지고, 약간의 두려움이 앞선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전투적인 자세로 돌변하곤 다. 이 모든 것은 현지 공항에 도착해 시내로 가는 길에서부터 '내가 이곳에 오고야 말았다'는 흥분과 대견함으로 바뀌지만.


이번엔 약 50일간 스페인과 프랑스에 머물기로 다.

짧은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가족과 반려견을 보지 못 할 생각을 하니 꽤나 길기도 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면 금세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있겠지.



여행이 인생을 바꾸진 못한다.

아니, 바꾸는 경우도 더러 있겠지만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다. 혼자 하는 여행을 통해서 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결정을 믿고 책임지는 사람, 하고 싶은 일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사람, 혼자가 두렵지 않은 주체적인 사람으로 자라고 싶을 뿐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에서 수없이 마주치게 되는 우울의 시기가 있다.

'여행'이란 찰나의 행복이 켜켜이 쌓인다면,

우울의 시간들조차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겨낼 힘을 가지게 될 거라 믿는다.  이것이 내가 여행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마드리드는 스물두 살의 내가 반년 간 살았던 곳이다.

나의 마음속 고향인 마드리드,

패기 넘치던 스물두 살의 내가

세상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찬 나로 변한 것처럼

너도 많이 달라졌을까?

그럼에도 나와 너의 본질은 여전하겠지.

우린 달라졌지만 달라지지 않았지.

너무나 그리웠다. 긴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기까지.

사실 난 여전히 터널 안을 지나는 중일 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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