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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후 Mar 26. 2020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도시

마음속에 사랑하는 도시 하나쯤 품고 산다는 것

출국을 며칠 앞두고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방의 창문이 고장 났으니, 다른 집을 소개해주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집에 대한 정보라곤 집주인이 보내준 몇 장의 사진이 전부였다. 출국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 남아있는 숙소는 중심지에서 터무니없이 멀거나, 비싼 가격대의 집뿐이었기에 어쩌겠나.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그 집으로 옮기는 수밖에.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한 밤.

잔뜩 긴장한 상태로 캐리어를 질질 끌며 숙소를 찾았다.

걱정과는 달리, 숙소는 아주 좋았다. (안타깝게도 같이 지낸 룸메이트의 위생관념은 상상을 초월했지만.)

사실 좋은 곳보단 저렴하고 역에서 가까운 곳을 위주로 찾는 배낭 여행객에겐 숙소의 의미가 그리 크지 않았다. 이번 숙소도 갑작스럽게 바뀌었지만, 내 침대 하나만 있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을 만큼 단순한 마인드였다. 마음에 드는 숙소에서 한 달을 묵고 나니, 숙소에 대한  여행관은 완전히 바뀌었다.


숙소 앞에 있던 동산의 해 질 녘

숙소는 곧 여행의 이미지가 되었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면 보이는 동네의 풍경이 결국 이 도시의 인상으로 남는다. 관광지와 조금 떨어진 현지인들 동네에 묵은 것은 이번 여행 최고의 행운이었다. 내가 사는 나라와 다른 곳에 사는 이들의 삶을 더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해 질 무렵이면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는 동산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휴식을 취했다.  나는 그곳에서 일몰을 바라보고,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밤이 되면 다리 건너 마드리드 왕궁 근처로 산책을 갔다. 은은한 조명이 들어온 왕궁의 야경은 마치 영화  한 장면처럼 멋있었다.


마드리드 왕궁을 마주한 야경


혹자는 마드리드가 '하루면 다 둘러보는 도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드리드에는 손꼽히는 멋진 미술관, 사람들이 아무 용건 없이 앉아 여유를 즐기는 공원과 광장, 스페인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레스토랑, 빈티지한 상점과 서점, 현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카페. 마드리드를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도시의 매력은 말로는 부족하다'는 뻔한 말밖에 할 수 없다. 하루면 다 둘러본다는 것의 의미는 다분히 관광 상품적인 관점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내가 마드리드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거리마다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도시는 골목을 돌 때마다 색다른 개성을 가졌다. 평범한 집들이 모여있는 거리들도 그 동네 사람들의 감각이 나타난다. 여행은 거리의 풍경이기도 하다. 거리마다의 분위기를 사랑하는 여행자라면, 망설임 없이 마드리드로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더 많은 사진은 SNS 계정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냥, 마드리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마음속으로 이 도시를 하나하나 그리는 것만으로 감정이 애틋해진다. 이 곳에서라면 모든 것이 차츰차츰 변해가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온 마음을 다해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도 가끔(이라기엔 꽤나 자주) 마드리드의 거리를 떠올린다. 현실이 나를 삼킬 때마다 마드리드에 살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 어느 순간 훌쩍 떠나고 싶은 곳을 마음에 새기며 산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도망을 상상한다는 것이 때론 현실을 살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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