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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후 Mar 29. 2020

일생에 스며든 예술의 경계

지구 반대편 스페인에서 만난 예술가들

음악이든, 그림이든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 항상 부러웠다. 같은 것을 표현하더라도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곤 한다.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보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는 예술을 즐길 줄만 알고, 예술에 재능 따윈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선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였다.


색 하나, 붓터치 하나 예술가의 손짓에 따라 완성된다.

하루는 스페인의 티센 미술관(Museo Thyssen-Bornemisza)에 갔다.

하나로도 벅찬 고귀한 작품들이 무려 3층에 거쳐 펼쳐져 있다. 이곳의  수많은 그림들을 보니 느껴졌다. 그림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고민을 하고 창작에 고통스러워했을까. 모든 작업을 '결과'로써 받아들이는 태도는 문화 향유자에게 해롭다. 쉽게 얻어지는 작업은 없다. 있다 하더라도, 이는 많은 사람의 마음까지 사진 못할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쉽지 않듯, 남들이 해낸 일 또한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완성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지구 반대편에 와서야 실감했다.




어느 날은 다른 동네의 공원을 거닐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아쉬운 마음에, 구글 지도를 켜서 근처의 작은 재즈바로 향했다. 레몬 맥주를 시키니 해바라기씨를 주는 귀여운 펍이었다. 리드미컬한 잔잔한 재즈로 시작한 공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페인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플라멩코를 기반으로 한 흥겹고 자유분방한 음악이 펼쳐졌다. 흥의 민족인 스페인 사람들은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한다. 여행 중에 재즈바를 자주 찾는 나로서도 신기한 장면이었다. 이제까지 경험한 대부분의 재즈바들은 잔잔한 재즈가 연주되면 같이 온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거나 조용히 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해바라기씨를 까다 보니 공연이 시작됐다.
두 시간을 보고도 집에 가기 싫었던 최고의 공연이었다.

재즈에는 실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음이 삐끗해도, 박자가 제멋대로여도, 드럼이 갑자기 독주를 시작해도 재즈는 즉흥성 자체로 음악이 된다. 실수와 완벽함의 차이. 실수는 무엇이고, 완벽함은 무엇일까? 악보대로 한다 해서 완벽한 음악이 되는 걸까?

재즈는 인생이었다. 인생은 정해진 대로 산다 해서 완벽하다 할 수 없다. 우리는 작은 실수에도 연연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애초에 실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재즈바에서 일생을 바치는 연주를 하는 예술가를 보며 존경심이 일었다.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은 자의 삶은 어떠할까. 재즈는 연주자의 행복과 몰입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예술이라 생각한다.



Museo del traje

마드리드 의상 박물관(Museo del traje)에 간 날이었다.

의상 박물관은 긴 시대에 거친 스페인의 의상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과거 유럽 중세시대의 옷들을 보면 숨도 못 쉴 만큼 조인 코르셋 투성인 옷이 많았다. 어느 유명한 디자이너의 옷은 무료로 준다 해도 안 입을 만큼 허름하기까지 했다. 필자에게 옷이란 '깔끔하고 실용적인' 것을 통했기 때문에 왜 이 옷이 박물관에 전시될 정도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예술가라면 어떤 의도로 이 옷을 만들었을까. 누군가에게 의상은 자신만의 개성이고, 표현의 수단이었다. 크게 보면 개인은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미'의 기준은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회가 만드는 것이다. 지금의 아름다움과 과거의 아름다움이 같지 않다고 투덜댈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술을 접하다 보면 생각의 흐름에 융통성이 생긴다. 간혹 가다 이해가지 않는 예술적 행위를 보더라도, 한참을 생각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찾다 보면 살아보지 않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도 한다. 예술은 '나다움'을 표현하는 창구이기도 하다. 과거로 되돌아봐도 사람들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예술을 향유하고 공감하였다. 급변하는 21세기에만 해당되는 현상이 아니다. 인류가 삭막한 세상을 견뎌내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과학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예술에 일생을 던진 이들 덕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인간의 고민은 1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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