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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야맘 Apr 07. 2024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열정적인 신입사원은 5년차에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어느날, 나는 막무가내로 일을 밀어붙이는 상사에게 "저는 더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회사를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생전부지 처음 본 사람에게 왜 내가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설명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목이 콱 막혀 말문을 열수가 없었고, 눈물만 흘러내렸다. 그렇게 서럽게 엉엉 운 시간이 5분은 되었을까.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그제서야 내가 왜 울었는지를 설명하려고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냈다. 그리고 내게 쥐어진 것은 매일 아침에 한알씩 먹는 약봉지와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중증 우울 에피소드"가 적힌 진단서였다

  학창시절 학생기록부에는 늘 "밝고 명랑한 아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직원들끼리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하니깐, "김 주임, 원래 그렇게 시니컬 했었나?"라고 누군가 물었고, 꽤 친한 직원이 "김 주임 원래 시니컬 하잖아" 라고 말했다. 내가 느끼기에 그 직원의 '시니컬'이라는 말은 골라서 포장된 말이었다. 사실 '비관적'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 때가 입사한지 3년차가 되었을 때였다.

  옆 부서에 있던 팀장님이 하루는 말을 걸어왔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은근히 나에게 자기 부서로 오라는 제의를 해왔다. 나를 어떻게 알고 같이 일하고 싶다는 걸까 궁금하던 찰나, A팀장님이 나를 아주 꼭 다시 함께 일하고 싶은 직원이라며, 사석에서 칭찬을 했다고 한다. A팀장님은 내가 입사한지 얼마 안됐을 때 같은 팀에서 일했었다. 입사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나는, "저한테 맡겨만 주시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는 구태의연한 말을 실제로 내뱉기도 했을 만큼 뭐든 열심히 했다. 

  처음 어떤 일을 하게 되었을 때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회사에 입사한지는 5년차, 지금은 그 이유를 잊어버렸다. 그냥 회사라는 조직에 맡겨져 이리저리 치이다보니 5년이 흘렀고, 내게 남겨진 것은 승진, 아주 조금의 급여 인상, 그리고 우울증이었다. 

  밝고 명랑했던 내가, 처음에는 그리도 의욕적이었던 내가 어찌해서 비관적이 되고, 우울증을 앓게 되었는가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먼저 '나는 왜 이렇게 괴로운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시작된 질문은 '왜 나는 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라는 본질적인 질문까지 이어졌다. 이 일을 시작할 무렵에는 내 인생에 의미있는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나도 함께 무너져 버린 것이다. 정신을 다시 차리고 이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인생의 가치관과 신념에서 멀어져버렸다내게 이 일은 더이상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버렸다.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참으로 애썼다는 매몰비용이 나를 5년동안 발목을 잡으면서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국립생태원 초대원장인 최재천 교수는 어떻게 해서 평생 곤충을 연구하는 업을 삼게 되었을까? 최재천 교수는 딱히 큰 목적성과 열정 없이 대학을 지질하게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살이 곤충을 채집하러 온 미국 유타대학교 교수의 조수를 맡게 된다. 그 교수는 개울물만 보이면 하루살이 유충을 채집하였다. 대학생 최재천은 멀리서 한국까지 온 교수가 관광은 뒷전으로 하고 자연과 어울러져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는다. 강원도 산골에서 자라 개울물에 첨벙거리고 성게알을 잡으며 노는 것을 그저 좋아한 대학생 최재천은 그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냥 선생님처럼 되는 방법만 가르쳐주시면 됩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다른 거 아무것도 필요 없고, 매일같이 개울물 첨벙거리면서 먹고 살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되는 겁니까?" (「최재천의 곤충사회」에서)

  나의 인생 가치관과 신념을 관통하는 일, 수단이 아닌 목적, 이유와 관계되는 일을 찾아야 일은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그 에너지가 타인에게 영감을 주며, 세상을 변화시키게 된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하루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며 보내는 '일'이 나의 행복, 내 인생의 신념과 관계가 없다면 그 삶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 자신 있게 내 인생 가치관과 연결시켜 대답할 수 있는 일을 하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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