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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Feb 20. 2024

아, 사흘이 3일 말하는 거였어?

스마트폰과 함께 태어나 완전한 디지털 인류로 자라난 최초의 인간 ‘알파 세대’. 이들은 엉켜있는 줄을 애써 풀어 옆자리 짝꿍과 노래를 나눠 듣던, 접힌 휴대폰을 얼어 팅과 알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던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신인류라 할 수 있겠다.


1980년대의 청춘을 다룬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덕선의 친구 만옥과 정봉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주말에 만나자는 약속을 잡는데, 아무도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만옥은 분명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 나갔었고, 정봉 역시 그 자리에 몇 시간을 내리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서로 길이 엇갈렸던 것이다. 휴대폰이 상용화되어있지 않던 시대라 서로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결국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둘은 가까스로 재회를 했다. 서러움으로 퉁퉁 부은 만옥의 눈과 추운 겨울날 밖을 서성이느라 부르튼 정봉의 손. 조금은 미련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날로그 시대의 기다림이 가져다준 잊지 못할 젊음의 한 순간일 테다.


만약 2024년을 살아가는 알파 세대의 먼 훗날을 그린 ‘응답하라 2024’가 있다면, 만옥과 정봉의 이야기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 조금의 상상력을 더해보자면, 우선 등장인물 이름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지난해 신생아 이름 순위 남녀 각각 1위를 차지한 이준과 이서는 어떨런지. 다음으로, 60년 전의 청춘에게는 ‘휴대폰’이 없었다면 미래의 청춘에게는 무엇이 없으려나. 최근까지 문해력이 큰 논란이었던 만큼 ‘언어능력’의 역치가 지금과는 다소 달라졌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니까, 얼마 전 뉴스에 나왔단 해프닝처럼, 이서가 이준에게 ‘우리, 사흘 뒤에 영화 보러 갈래?’라는 말을 했다면 이준은 그보다 하루 뒤에 약속 장소에 나가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참을 기다린 이서가 메신저를 보낸 뒤에야 이준은 ‘아, 사흘이 4일이 아니라 3일을 이야기한 거였어?’라고 충격을 받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이준과 이서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며 ‘지나친 비약 혹은 알파 세대 비하 아냐?’라고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의 놀림도 있긴 했다. 그러나 실제로 최근 한 일간지 조사 결과, 알파 세대를 교육하는 교사들은 입을 모아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이 이전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다고 걱정했다. 스마트폰을 달고 사는 아이들이 숏폼과 자극적인 영상에 중독된 탓이다. 단어를 유추하는 능력이나 문맥을 파악하려는 의지가 사라진 것이다. 1분 남짓한 영상에도 잘게 썰린 더욱 짧은 장면이 존재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미래 세대는 도파민에 청춘을 내어주고 있는 모양새와 다름없다.


다만, 이들의 생활 방식이 이전 세대가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돌파구나 전에 없던 현명하고 효율적인 삶의 방향키가 될 수도 있다. 겪어보지 않은 미래를, 짧은 경험만으로 평가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중독이 만성화된 일상에서, 소위 내가 ‘라떼’ 느꼈던 엉킨 줄을 풀어내던 설렘을 느끼기 어렵다는 사실만이 조금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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