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미와 도달미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분투(1)
“와, 너 그러면 중국어 잘하겠다!”
지난번 짧게 말씀드렸듯, 저는 곧 대만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떠납니다. 슬슬 주변에도 ‘나 3개월 동안 한국에 없어~’라고 말을 하고 다니는데요, 그럴 때마다 항상 듣는 말이 있습니다.
‘오, 너 중국어 좀 하는구나?’
제게 의외의 능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주는 건 참 고마운 일이지만… 사실 저는 중국어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말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습니다. 딱 이 정도밖에 못 합니다.
- 안녕하세요
- 실례합니다
- 감사합니다
- 모르겠어요, 못 알아듣겠습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또 이렇게 묻습니다.
‘아니, 말을 하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어학연수 갈 생각을 했어?’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 맞는 말입니다. 보통 어학연수라고 하면, 한국에서 어느 정도 베이스를 쌓아 두고 더욱 유창하게 말을 하기 위해, 현지의 느낌을 배우기 위해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돈 낭비, 시간 낭비 하기 쉬울 테니까요. 사실 저도 대만까지 가서 성조와 발음부터 배우는 건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떠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계속 질문을 받다 보니 저도 그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 여행 가본 게 다인데 무슨 자신감으로 왕초보가 훌쩍 해외로 떠나려고 했을까. 더구나 다니던 직장까지 관두고, 다시 시험을 준비하려고 했으면서! 여러 공부를 병행하는 게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한 걸까?’
같은 의문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닙니다. 그러다 번뜩 스치는 생각 하나,
“노베이스의 힘!”
돌이켜보면 저는 ‘노베이스’에서 뭔가를 시작한 적이 많았습니다. ‘남들 다 그래~’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제가 노베이스에서 유베이스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노베이스’라는 말이 가장 자주 쓰이는 시험 중 하나인 ‘토익’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취직의 필수 관문이자, 제 속을 아직도(!) 썩이고 있는 시험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도무지 성적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주변 친구들을 보면, 일주일 만에 900점을 훌쩍 넘기거나 첫 시험에서 800점 대 후반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비법을 물었더니, 그냥 기출문제를 풀고 가라고 하네요, 그러면 아무리 노베이스라도 좋은 점수가 나온다 말하면서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기출문제를 열심히 돌렸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들. 학창 시절 영미권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경험이 있거나, 하다 못해 수능 영어에서 1등급을 받은 수재들이었습니다.
‘이건 노베이스가 아니지!’
약간의 배신감이 들었지만, 기초가 부족하다는 것에 관한 개개인의 기준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추구미와 도달미
약간 유행이 지난 것 같지만, 한동안 많이 쓰인 말 중에 ‘추구미’ 그리고 ‘도달미’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추구미는 내가 지향하는 모습이고, 그에 반해 도달미는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노래 부르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제 추구미는 ‘노래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음치였습니다. 진짜 지독했습니다. 정말로요. 박자도 못 맞췄습니다. 오죽하면 처음 제게 보컬 강습을 해줬던 선생님이 ‘소리 내는 법을 아예 모른다’며 안타까워해주셨을까요.
그래도 꾸준히 배웠습니다. 노래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노력하다 보면 노래할 수 있는 사람 정도에는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요.
그렇게 2019년 말부터 2023년까지 보컬 레슨을 받았고, 그 이후에는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어 혼자 일주일에 세 번씩 코인노래방에 가서 배웠던 내용과 기술을 복습했습니다.
2025년이 된 지금, 저는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제법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잘하지는 않지만, 들어줄 만은 하게 된 것이지요. 남들 앞에서 불러도 부끄럽지 않을 곡도 한, 두 개가 생겼습니다.
여전히 도달미-추구미 사이에 간극이 크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그러다 보니 제 인생을 관통하던 ‘해도 안되면 어쩌지’라는 막연한 불안감도 많이 잦아들었습니다.
그렇게 노래를 배우고, 기타를 배우고, 운동도 배우고. 하나씩 배워갔습니다. 음치/몸치/박치/운동치…‘치’가 붙을 수 있는 건 온통 제 것이었는데 이제 그 정도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다시, 노베이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맨땅에 헤딩하는 게 꽤 익숙해졌습니다. 취미 생활 말고도 학업에서나, 진로 선택에서나 저는 잘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걸 선택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딱히 도전정신이나 모험정신이 강해서 그랬던 건 아니고, 성향인 것 같습니다. )
그탓에 벌써 퇴사도 여러 번 하고 29살에 다시 무직이 되었지만 덕분에 후회는 덜 합니다. 지긋지긋한(?) 노베이스 인생에서 약간의 맷집을 얻기도 했고요.
그래서 대만에 가기 전까지, 노베이스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을 잠깐 풀어볼까 합니다. 원래 대만 어학연수 준비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미 블로그 등에 너무 잘 정리가 되어있고… 솔직히 딱히 준비랄 것도 없었기에 제 이야기나 실컷 하다 가려고 합니다.
물론 대만에서도 브런치는 쓸 겁니다. 다만 그곳에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있어서 미리 저의 이야기를 맘껏 하고 가려고 합니다.
찐 노베이스란 무엇인지,
솔직하게 털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