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생각해. 살려고 노력하느라, 정작 살 시간이 없는 건 아닌가
Sometimes I think I’m fighting for a life I ain’t got time to live”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中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숙소를 나선다. 둘째 날과 셋째 날 찾았던 근처 카페에서 늦은 아침을 먹기로 한다. 단골이 많은 카페다. 손님들은 각자 자기 컵을 들고 와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주문하기 전에는 아침 인사를 나눴다. 그래봐야 뻔한 날씨 이야기 정도겠지만. 그렇다고 믿고 싶었지만, 조금 부럽다.
“여기서 며칠 더 살고 싶다.”
나는 당신 말에 동의한다. 며칠 더 머물면 나도 가벼운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겠지. 우리는 길과 접한 바 테이블에 앉는다. 메뉴를 고르며 바깥을 관찰한다. 앞 테이블 비지니스맨은 롱블랙을 주문하며 다리를 떤다. 정장 바지에 캐릭터 양말이 귀여워 나는 그의 양말 사진을 한 장 찍는다. 옆 자리에는 반려견과 산책하러 온 남자가 앉는다. 어제와 같은 자리다. 그가 자리를 잡자 카페 주인은 너른 접시에 물을 담아 테이블 아래 두고 간다. 남자보다 개가 먼저 목을 축인다.
건너편에는 모델 같은 남자가 벽에 기대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사람들 시선을 즐기는 사람인가? 카페 주인이 문 밖으로 걸어가 테이크아웃 커피를 건넨다. 그 또한 단골이었다. 그는 빵 한 봉지를 더 기다려 받은 후 자리를 뜬다. 손님에게 커피나 빵을 가져갈 때, 카페 주인과 아르바이트생은 커피가 담긴 컵이나 빵이 담김 봉지를 손에 들고 가져갔다. 귀찮지 않다는 듯. 실내에서도 컵과 접시를 손에 든 채 같은 테이블을 두세 번 오간다. 트레이는 쓰지 않는다. 그게 친숙함의 표현이라는 듯.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던 카페 주인장과 눈이 마주친다. 그가 가볍게 손을 들고 다가온다.
“너희들 기억해. 어제도 왔었지. 오늘도 같은 걸로 마실 거야?”
우리 대화를 듣기라도 한 건가. 반가운 마음에 ‘어제와 같은 걸’주문한다. 외국어를 잘 했다면 날씨 이야기도 좀 했을 텐데. 날씨이야기는 못했지만 ‘어제와 같은 걸로’ 주문하고 나니 왠지 동네사람이 된 것 같다.
당신과 나는 커피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을 계속해서 관찰한다. 어제 한 번 본 것 같은 이들에게는 우리 마음대로 ‘샘’ ‘제니’ 같은 이름을 붙인다. ‘샘은 오늘 지각이네.’ ‘제니는 머리 스타일이 바뀌었어.’ ‘피터와 크리스틴은 썸 타는 것 같지 않아?’하며. 그 사이 ‘데니’라고 이름 붙인 카페 주인이 커피를 손에 들고와 내려놓는다. 그가 건넨 건 ‘카페라떼’다. 어제 먹은 건 ‘플랫화이트’였는데. 그 정도야. 그래도 ‘우유 커피’라는 건 기억했잖아. 나는 눈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나도 가끔 실수는 해’하고. 카페를 나올 때는 ‘see you tomorrow’하고 인사한다. 내일이면 다른 곳에 있겠지만.
버스정류장 가는 길은 어제와 같은 길인데 처음 보는 것들이 많다. ‘오가닉 마켓’ 간판이 보인다. ‘알았으면 진작 갔을 텐데.“ 모퉁이를 도는데 색색의 창문이 예쁜 건물이 있다. 그리고 큰 길 옆에는 그토록 찾던 타이 레스토랑이 약 올리듯 반긴다.
‘결국 못 먹었어.’
당신과 나는 닷새 동안 별로 쓰지 않았던 감각들을 자꾸만 꺼내 든다. 공항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서 한 번 더 뒤척인다. 카페라떼 맛이 혀끝에 맴돈다. 그때 하얀 셔츠를 입은 할머니가 지나간다. 그녀는 백발이 곱고 매무새가 참 단정하다. 세탁소에 다녀오는 길인지 하얀 셔츠 두 벌이 어깨에 걸치듯 들려 있다. 반대편
팔목에는 가방을 걸었는데 손끝에 잡은 꽃다발을 힘주어 쥐고 있다. 누군가가 선물한 것 같지는 않다. 당신이 색을 보고 향을 맡아 고른 꽃이겠지. 아마 오늘 점심 식탁 위에 놓일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좇는다. 그녀의 나이든 몸은 구부정하지만 꼿꼿한 삶의 향취가 풍긴다. 무엇보다 내게 없는 일상의 반듯한 균형을 느낀다.
‘꽃이 아름다운 걸 잊지 않는 생활’
나는 짧게 메모한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어딘가에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되새기려. 완전한 일상이나 완전한 자유는 없겠지만 세탁소 옆 꽃집을 지나왔다는 걸 잊지 않을 만큼 은 기억하며 살아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