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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간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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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Aug 28. 2022

인간 30년

-서문-

나무는 땅 위에서 자라야 한다. 바람의 무한한 유희에 지친 씨앗에게는 뿌리 닻을 내릴 항구가 필요하다. 집은 반석 위에 지어야 한다. 세월의 파도에 쓸려나가지 않기 위해서는 고집스러울 만큼 단단한 지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디에 세워져야 할 것인가. 세월은 강물과 같다. 영원히 흐르기에 하루도 같은 날이 없고, 하류로 갈수록 유속이 증가해 무언가를 세우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 마음은 구름과 같다. 구름의 본성은 변심이기에 신 외에는 그곳에 초가집 하나 지을 수 없다. 하여 나는 언어를 택했다.     


  인간 30년. 이제야 내 언어는 걸음마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옹알이처럼 불투명하게 맴돌던 감정에 진흙에 쐐기 문자를 새기던 수메르인의 심정으로 투박하게나마 형태를 부여할 수 있게 됐다. 아바, 어바하며 침침하게 언어의 바닥을 더듬던 혀가 패배를 유보된 승리라, 1%의 가능성을 99%의 믿음이라 발음할 수 있게 됐다. 언어는 불락의 요새다. 건물이나 산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어도 글이나 문장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언어는 얇은 종이 위에도 성세를 쌓을 수 있다. 문장은 수천, 수만 개를 수직으로 켜켜이 쌓아도 균열이 발생하지 않는다. 글자는 만리장성의 길이만큼 세로 일렬로 나열한다 해도 결코 지면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언어는 허공에 보이지 않는 도로를 내기도 한다. 그 위를 설화나 교훈 같은 것들이 달린다. 그중 가장 빠른 것은 소문으로 그것은 돛을 펴고 번지는 들불보다도 빠르다. 언어의 솜씨가 그 옛날 로마로 통하는 길을 닦던 로마인들보다도 우수하다는 것이 이 대목에서 증명된다.     


  언어의 견고함을 빌어 그 위에 영혼의 망루를 지으려 한다. 인생은 첩첩산중이다. 한 고개를 넘어 숨을 돌리려 하면 다른 고개가 버티고 서서 숨을 턱 막히게 한다. 이때 사유에 높이가 없으면 정신은 길을 찾지 못해 고립무원의 산중을 헤매게 된다. 감정은 탈진해 쓰러지고, 지성은 아사 직전까지 몰려 독버섯까지 허겁지겁 삼키게 된다. 환각 상태에 빠진 영혼은 다들 그렇게 살며 착하면 너만 손해 본다는 둥 말 대신 비겁한 방귀나 뀌게 된다. <인간 30년>은 이러한 비극적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사전 조치이다.     


  거창하게 말한 것에 비해 적는 것들은 소소할 것이다. 내 글재주는 알고 있는 것을 적는데도 숨을 허덕일 만큼 왜소하다. 살아온 시간은 끽해야 30년으로 100세 시대의 무릎에나 간신히 닿을 만큼 적다. 이것이 소소함의 이유이다. ‘어른이란’, ‘인간의 구성 요소는 무엇인가’하는 한가한 질문을 던지며 언어의 벽돌을 하나씩 쌓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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