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뭐 서운한 거 있어?"
우리는 가끔 이런 소리를 듣기도 하고 하기도 한다. '서운하다'를 단어장에 검색해 보면 마음에 모자라 아쉽거나 섭섭한 느낌이 있다고 나온다. 그렇다. 서운하다는 감정은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있어야 생기는 감정이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다면 서운할 일도 없다. 그런데 그 서운함이 때로는 어느 한쪽에서만 일방적으로 느껴져서 옥신각신하기도 한다.
어제 아는 동생이 요즘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 자신을 두고 서운해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서운하다는 마음을 전하면서 속상해서 울기까지 했다고 부담스럽다고 했다. 자신은 아무 느낌도 없는데 상대방만 혼자 서운함을 갖고 속을 끓이고 있는 것 같다며 말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둘은 서로 스스럼없이 차도 편히 마시고 일상 대화를 나누면서 지냈던 사이였던 것 같다. 그런데 동생이 그 사람을 알면 알수록 더 알아가고 싶다는 감정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그러하니 연락도 전보다는 소홀했던 것 같은데 그 상대는 속마음을 모르니 당연 섭섭할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크기가 같으면 좋지만 어디 그럴 수가 있을까.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래서 사람사이 관계를 통해서 느끼는 감정은 오롯이 각자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서운한 사람이 있다. 오래전 20대 초반에 알던 언니가 있다. 세상물정 모르는 내게 친동생처럼 너무 잘해줬다. 어린 나에게 마음뿐 아니라 떡볶이도 사주고 너무 잘해준 언니였다. 언니가 없는 나에게는 더 심적으로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다. 결혼 이후 서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쩌다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너무 보고 싶어서 수소문을 해서 찾아냈다. 꼭 다시금 만나고 싶던 언니여서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약속을 정했고 만났다. 그렇게 두어 번을 만났다. 그런데 결과는 좋지 않다. 지금은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는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서로의 마음이 달라졌을까. 그 시절처럼 서로를 대하는 감정이 같지 않았다. 어쩌면 언니만 나를 대하는 마음의 온도차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언니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 감정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던 것이 언니를 만날수록 내가 왠지 모르게 언니한테 서운해하고 있었다.
'왜 연락을 안 하지? 나 혼자만 연락을 하네.' '내가 예전처럼 좋지 않은가'등 내가 욕심을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 이렇게는 안 되겠구나.' 내 감정으로 상대를 부담스럽게 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찌 보면 서운함도 내가 받아들이고 내가 소화해야 할 감정인 셈이다. 어른이니까 유치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너무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만족이고 기쁨이고 지금껏 그랬듯이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면 되지 싶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독이기로 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 시절 웃고 즐거웠던 그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어려서는 서툴던 감정처리가 많았다. 물론 지금도 서툴고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감정처리에 대해서 관심이 생긴 만큼 나이를 한 살씩 더 해갈수록 감정에 있어서 조금 더 성숙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을 알아줘'하면서 툴툴거리면서 징징거리고 싶지도 않다. 감정이란 것이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되는 만큼 각자의 방식으로 인정하고 비워낼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섭섭하면 조금 섭섭한 대로 아쉬우면 조금 아쉬운 대로 그대로 두었으면 싶다. 적어도 우리는 어른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좋아서 하면
내 마음이 진심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일이 되는 것이니,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