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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se Jul 07. 2024

[단상] 낮, 신주쿠

점심식사를 하러 나갈 때만 해도 체감 온도 40도를 웃도는 숨 막히는 공기가 힘들게 하더니 지금은 어둑해진 창밖으로 천둥 번개가 요란하다. 덜 마른 빨래를 말리느라 에어컨을 계속 틀어놓으니 몸이 으스스 추워진다. 긴 옷을 걸쳐 입고 전기포트의 스위치를 켠다. 며칠 전 묵던 호텔에서 챙겨 온 자그마한 녹차 팩 하나를 꺼내 종이컵에 털어 넣는다. 따뜻한 녹차 몇 모금에 캐리어하나 제대로 펼칠 수 없을만큼 좁고 서늘한 신주쿠 호텔 방 안이 다소 포근해진다.


내친김에 지난 2주간 한 번도 펼치지 못했던 책을 꺼내 본다. 어젯밤 잠시 흔들렸던 마음 때문에 치료제가 필요했나 보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집. 대작가의 수줍고 겸손하며 소탈한 생각들을 한줄한줄 읽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이나 근심이 마법처럼 가라앉는다. 어젯밤엔 큰 딸과, 오늘 오전엔 둘째 딸과 짬을 내어 영상통화를 했다. 오고 가는 시시 콜콜한 이야기에 힘을 얻는다. 내친김에 큰 딸 기말고사 종료 기념으로 약간의 용돈을 토스 계좌로 입금했다. 입금했노라 메시지를 남겼더니 예쁜 식빵 하트 이모티콘 답장이 온다. 조금 전엔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됐는데 아무래도 새 배터리로 교체해야겠다고 한다. 대단치 않은 가족과의 일상과 대화들이 해외에서 일을 할 때면 늘 생각나고 그립다.


촬영 출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오늘은 도쿄 시내 작은 골목에서의 밤씬 촬영이 예정되어 있다. 창밖엔 세찬 비가 퍼붓고 천둥번개는 더욱 요란해졌다. 곧 그치겠지.


2024.07.06.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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