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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se Sep 19. 2023

[Photo] 미싱

< Amsterdam, Netherlands, 2015 >

< Amsterdam, Netherlands, 2015 >

손재주가 많은 초등생 둘째 딸. 모든 버릴 만한 물건도 딸의 손을 거치면 멋진 작품이 된다. 헌 옷도 예외가 아니다. 의류수거함으로 향하는 헌 옷 무더기는 언제나 딸의 검열을 거쳐야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 통과에 실패했지만 새로운 생명을 얻는 다양한 무늬의 옷가지들. 가위로 자르고 바느질을 하면 어느새 멋진 인형옷이 되기도, 주머니가 되기도 한다. 바느질의 빈도가 늘어나고 결과물의 완성도가 올라가면서 지금은 작은 미싱을 사용하고 있다.


미싱은 요즘 세대에 익숙한 물건은 아니다. 지금이야 반도체, 전기차, 로봇, 자율주행 등 미래 산업이 한국경제를 이끌어 가지만 1970년대만 해도 섬유 및 의류 산업이 국가경제에 큰 축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노찾사의 노래 <사계> 속 반복되는 가사처럼 미싱이 쉬지 않고 돌고 또 돌았던 시절이 불과 사십여년 전이다. 당시 미싱은 산업 현장의 중요한 필수품 중 하나였다. 미싱을 판매하거나 기능적으로 잘 다루는 사람도 많이 필요했을 터. 나의 아버지는 그 시절 미싱 전문가였다.


‘부라더 미싱’ 간판 아래, 제법 큰 대리점 앞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오래된 사진이 있다. 하지만 어릴 적 기억 속엔 번듯한 대리점에 대한 기억은 없다. 차 안 가득한 미싱들, 집안 곳곳에 놓여있는 미싱과 케이스 그리고 부품들, 윤활유 기름 냄새, 적잖은 진동을 일으키며 돌아가는 모터소리, 안경 너머로 미싱을 점검하는 세심한 눈빛과 손동작,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힌 작고 때 묻은 수첩, 판매 또는 수리를 위해 통화하는 또랑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대부분의 기억이다.


미싱이 한가득 실린 차를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시내 어딘가에 세워 놓으면 그곳이 아버지의 일터였다. 미싱을 고치는 시간보다 기약 없는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일과의 대부분이었으리라. 모든 문을 활짝 열어놓은 차 안에서 아버지는 늘 책을 읽으셨다. 어디서 샀는지 모를, 유난히도 헐거운, 값싼 돋보기 안경과 도서관에서 빌린 몇 권의 책은 항상 조수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직접 챙겨 온 식사를 차 안에서 해결하고, 주변 산책도 빼놓지 않으셨다.


인형 옷을 디자인하고 만들기에 한창 열을 올릴 때 즈음, 둘째 딸은 미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혹여 짐이 될까 구입하기를 미루고 있었다. 그 바람은 어느새 할아버지에게 전해졌다. 손녀딸이 원한다니 미싱 전문가였던 할아버지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어느 날 전문가가 쓸법한 제법 깨끗하고 묵직한 미싱을 손수 가지고 오셨다. 아버지의 집 한켠에 두어 개 남은 미싱을 본 적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점검해서 가지고 오셨나 보다.


둘째 딸은 신이 났다. 가족 모두 호기심에 미싱을 작동시켜 보려는데, 문제가 있었다. 노루발 아래 밑실을 꼽는 뭉치(?)가 없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이곳저곳 부품을 살 수 있는지 알아보았으나 불가능했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고 결국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다른 미싱을 구입했다. 저렴하고 세련되며 간편하기까지 한 미싱을. 아버지가 준 미싱은 새 미싱이 온 이후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오랫동안 거실 한켠을 차지하더니, 어느샌가 큰 베란다 잡동사니 사이로 쫓겨났다. 지금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듯, 긴 전원 코드를 축 늘어뜨린 채, 뒷베란다 재활용 쓰레기통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어느덧 아버지의 나이도 팔순이 넘었다. 차량 가득 정신없이 실려있던 미싱도, ‘미싱 수리 및 판매’가 적혀있던 눅눅한 플래카드도, 아버지의 직장이나 다름없었던 차량도 이제는 없다. 해외출장 중 어느 도시 길거리 벼룩시장에서, 인테리어 소품으로 한껏 뽐내고 있는 커다란 식당 한켠에서, 우연히 미싱을 마주할 때마다 발걸음을 멈춘다. 미싱은 아버지를 떠올리는 매개였다. 기억이 닿는 아주 먼 어린 시절에도 아버지 옆엔 항상 미싱이 있었다. 철없이 모르고 지냈지만 미싱은 아버지의 인생이고 자아였으며, 나와 누나 그리고 엄마를 지켜주던 가장의 무엇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쓸모를 다한 저 미싱을. 손녀를 위해 품에 들고 온 저 미싱을. 아버지의 오랜 세월을 말하고 있는 저 미싱을. 흐르는 세월과 변화 앞에 ‘쓸모’라는 단어가 참 애달프다. 버릴 생각을 하니 그저 아쉽고 서운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니고 있을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마음의 정리가 되면 이별을 할 적당한 때가 오겠지. '아빠의 미싱'이 없어진 자리에는 다른 쓸모 있는 것들이 또다시 채워질 것이다. 미싱이 한때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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