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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홉이든 Jul 25. 2018

홉이 피다

그것도 아주 활짝!

'홉이든'은 홉 농사를 짓습니다. 
3년 간의 자전거 세계여행을 마치고 귀농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습닌다. 신선한 홉을 생산하고 맛있는 맥주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께선 아래의 홉이든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www.hopeden.com

홉 세상 밖으로


겨울에 구매 계약해 둔 종근이 봄이 되자 배송되었다. 그런데, 설치를 마치지 못한 지주대에 문제가 생겼다. 사나흘 간 이어진 봄비가 화근이었다. 1미터 깊이로 파묻은 사각관 파이프는 구덩이 주위가 물러져 몽땅 쓰러져 버린 것. 누구는 울상이었고 누구는 웃었다. 앞으로 몇 번이고 넘어야 할 시련 가운데 하나였고, 반복되는 시행착오에서 배움을 얻는 과정의 시작이었다. 괜찮아, 파이팅!


비가 그치자 바람이 세다. 금세 땅이 말랐다. 서둘러 지주대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쓰러진 지주대는 상부가 이어진 구조라 일으켜 세우는 일은 예상보다 수월하였고 마무리 작업도 순조로웠다.  급한 대로 부모님 애호박 농사에 쓰고 남은 끈을 유인줄로 매달고, 뽀얀 보랏빛 싹이 나기 시작한 종근을 정성껏 파묻었다. 3주가 지나고 4월 말. 짚풀 사이로 빼꼼히 초록빛 아기 잎이 돋았다. 한 뼘 남짓한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 6미터나 자란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첫 해엔 외형보다는 그저 튼튼하고 건강하게만 뿌리내려주길 기도할 뿐. 무척 궁금하긴 하다. 열매가 달리긴 하는 걸까?


얼마 후 씨앗 발아도 진전이 있었다. 그룹 A의 세 가지 품종 모두 새순이 하나씩 나왔다. 그토록 어렵다는 발아를 단번에 성공하다니 너무 기뻤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장 늦게 심은 그룹 C에서도 새순이 나왔는데 고작 한 품종뿐이고 1주일 만에 발아에 성공했을 뿐 나머진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리고 B그룹은 지금(7월)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그 어렵다는 씨앗 발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체 발아율은 약 3%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처음이라 준비도 미흡했고, 시작이 늦은 것도 원인이겠다. 정성과 지식을 더해 내년엔 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그룹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전 포스팅을 참조하세요
‘홉이든. 나는 홉 농부다’ 보기


새순이 나온 뿌리 주변에 거름을 뿌려 주고 스무날이 지났다. 1미터를 훌쩍 자란 덩굴은 땅바닥에 누워 기어오를 동아줄을 찾아 촉수를 뻗고 있었다. 고정핀도 아직 준비 못했는데 성장이 빠르다. 하는 수 없이, 급한 대로 지주대에서 내린 유인선 끝을 고추 작대기를 써서 땅에 박아 넣었다. 쑤욱 찔러 들어가는 것이 땅이 촉촉한 모양이다. 한동안 물은 안 줘도 되겠군. 고정된 유인선에 넝쿨을 감을 땐 법칙이 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북반구에서는 시계방향으로 감아 주어야 한다. 남반구의 넝쿨식물은 반시계 방향으로 감아올라간다.  에콰도르 적도지역에서 경험한 자연현상을 홉 농사에서 재발견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모든 것은 이어져 있구나. 유인선에 감긴 홉은 훨씬 편안해 보였다. 첫해 과연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쑥쑥 자라거라.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세요.
‘칠레 에콰도르 에피소드’ 보기
간밤에 강풍으로 넘어진 지주대. 마음이 아프다
종근도 씨앗도 싹이 났다. 기분이 좋다.



홉 꽃이 피다


유인선을 따라 감은 덩굴이 4미터 정도 되었을 때 희한한 현상이 목격되었다. 줄기 상단 부분을 부풀리기 시작하더니 며칠 뒤 이파리 아래 노란 꽃을 피워냈다. 홉 꽃은 이쁘지 않다. 농사일 마치고 기절하듯 잠들고 난 다음날 거울에 비친 내 머리와 같다.


보름이 또 가고 노란 꽃은 연둣빛 구화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대부분 5미터 정도로 자란 덩굴은 더는 자라지 않고 부피를 불려 가고 있었다. 양팔 벌린 가지 아래로 달랑달랑 구화를 매달았다. 첫 해에도 이렇게 자라면 뿌리가 되려 약해지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되면서도 점점 풍성해지는 구화를 보니 기분이 무척 좋다. 이쯤이면 수확도 기대해 볼 만하다. 먼저 꽃을 터트린 품종은 윌라맷이었지만, 출발은 늦었어도 소출이 좋은 쪽은 캐스케이드였다.

콘 모양으로 변해간다. 신기하다.



아! 응애에요


‘아싸! 호랑나비~♫ 한 마리가~홉 밭에 앉았는데~♫’


1980년대. 이 노래로 큰 히트를 쳤던 가수 김흥국. 그의 유행어 ‘아! 응애예요.’


호랑나비는 오지 않고 해충 ‘응애’가 홉밭을 침공했다. ‘응애*’는 홉의 주적인 해충이다. 뿌리 주변 어린잎 몇 개가 누렇게 변한 것을 보고 아버지께 여쭈었더니 오더를 내리신다.


“손가락으로 잎 뒷면을 문질러보거라” 


옅은 붉은 색 자국을 남긴다. 옅은 붉은색 자국을 남긴다. 응애가 맞았다. 번식력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당장 방제를 해야 한다고 하신다. 너무 쉽게 원인과 해결책을 알았다.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우리 둘이서 몇 날 며칠을 헤맸을 것이다. 또 하나 배우고 성장합니다.



수제 맥주 양조장을 찾다


홉은 우리 부부가 제안한 신규 아이템이고, 부모님의 주력품목은 사과대추와 애호박이다. 그리고 수십 년간 통상적으로 해 오시던 작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벼는 당연하고 마늘, 고추, 양파, 깨, 오이, 가지, 토마토, 온갖 나물에, 옥수수, 콩만 해도 네 가지. 과일도 있다. 수박, 참외, 매실, 살구, 자두, 복숭아, 사과, 배. 올해는 기력이 달려서 감자와 고구마는 안 하셨단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 친구들과 건강 먹거리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귀농을 한 우리. 부모님 하시는 일을 도우며 배우는 것임은 분명한데 일이 끊일 날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주력은 홉이기에 농번기를 피해 틈틈이 수제 맥주 양조장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처음 가게 된 곳은 부산에 있는 양조장으로, 세계 여행 중 만난 ‘그녀’와의 인연이 낳은 결과다. ‘맥주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주제로 자전거 여행을 하던 그녀를 만난 건 2016년 여름이었다. 이미 유럽의 많은 맥주 양조장을 다녔고 이번엔 미국 여행에서 우리와 인연이 닿았다. 맥주 이야기를 할 때면 그녀의 눈은 초롱초롱 빛이 났고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우린 그녀를 통해 맥주뿐만 아니라 맥주 문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맥주를 사랑하는 그녀가 지금 수제 맥주 양조장에서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기뻤다.


부산 송정에 위치한 W양조장에서 그녀의 책 ‘두 바퀴로 그리는 맥주 일기’ 출판기념 파티가 있었다. 마케팅 매니저답다.  책 후반부에 우리 이야기도 실었단다. 각자 한 권씩 구입하고 사인을 받았다. 여행 때나 일할 때나 늘 열정적인 그녀가 좋다. 지인 덕으로 대표와 양조사도 소개받고 W양조장만의 특색 있는 사우어 맥주를 맛볼 수 있었다. 앞으로 그녀의 활약이 기대된다.


부산의 또 다른 양조장은 광안리 해변에서 유명한 G양조장. 영국인이 설립한 곳으로 홉밭을 가지고 있다 하여 더욱 관심이 갔다. 풍부한 홉향과 쌉쌀한 맛이 살아 있는 IPA로 그들이 대표하는 맥주이다. 그들의 홉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생홉으로 만든 계절 맥주는 어떤 맛일까. 국내에 양조장과 홉 농장을 함께 운영하는 곳은 불과 3곳(2018년 기준) 뿐인데 무척 궁금하다. 미리 약속을 잡고 갔기에 운영진과 인사를 나눌 수 있어 좋았고, 나중에 그들 농장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수확철에 다시 만나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 나누고 싶은 곳이다.


그 외에 남양주, 안동, 문경을 다녔으나 이야깃거리는 아직 부족하다. 한 해 두 해 앞으로 홉 향 솔솔 풍기는 고품질의 소규모 양조장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원하시는 홉이 있으신가요? 언제든 ‘홉이든’에 연락 주세요.”
“당신의 맥주를 마시며 당신을 알고 싶어요.”


와일드웨이브 대표님과 승하씨와 함께.





태풍이 온다


장마철에 들었다. 비가 충분히 오는 건 좋았는데 난데없이 7월에 태풍이라니. 그것도 우리 지역을 관통할 것이라 기상청은 예보했다. 홉 농부에게 바람은 두렵다. 5미터가 훌쩍 넘은 덩굴이 유인선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당장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어머니의 지도하에, 지상 1.5미터 지점에 수평으로 줄을 쳐주고 끈으로 덩굴을 묶어 줄에 고정시켰다.  그 정도면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줄기가 서로 엉키거나 뿌리 쪽이 끊어지지 않을 것 같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걱정, 바람이 너무 세도 걱정. 농부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은 최대한 하되, 나머지는 하늘에 맡길 뿐이다.  며칠 새 비는 많이 내렸지만 태풍의 경로는 동해 쪽으로 더욱 치우쳐 빠져나갔다. 우리 지역은 무사했지만 전라도 지방엔 폭우에 농경지 침수 피해가 크다고 하는데 부디 큰 피해 없길 빈다. 전라도의 어느 선배 홉 농부가 걱정되는 날이다.


태풍 대비 가드 라인을 그렉 덕분에 쉽게 했다.




외국친구와 함께 일하기

우리 농장엔 다양한 외국 친구들이 찾아온다. 카우치서핑, 웜 샤워스, 우프, 워크어웨이 등 다양한 플랫폼이 있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집 떠나 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몸과 마음을 편히 둘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다. 3년 간 우리가 경험한 감사함을 다른 여행자와 나누고 실천하는 마음에서 홉이든 은 호스팅을 하고 있다. 호스팅의 좋은 점은 3가지로 요약된다.


농사일에 도움이 된다. 특히 농번기라면 더욱 그렇다.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력이 된다. 외국 친구는 새로운 문화와 영감을 주며 이는 지방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작은 시골마을이 세계와 이어져 있다는 인식의 전환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귀농을 하고 정착했지만 늘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여행담과 삶의 이야기가 우리를 가슴 뛰게 만들고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그동안 폴란드, 영국, 브라질, 멕시코 등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이 우리 농장을 다녀갔다. 호스트를 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외국 여행자들이 한국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해는 시작하는 해라 많은 것이 미흡하다. 조금씩 준비를 갖추어 나가면 더욱 재미있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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