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허락된 생명 에필로그
2년 전부터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 하는 부모학교를 수강했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지만 지나고 보니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태도가 점차 달라졌다.
당장 나부터 그랬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말하는 언행에서 진정 사랑이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부모가 아닌 학부모였다.
내 자식을 보고 얘는 왜 그럴까가 아니라 내가 이 아이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말하고 있는가 나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막달이 되면서 남편이 육아휴직을 썼다.
두 사람 모두 육아휴직을 쓰면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질까 걱정되셨는지
양가 부모님은 한 사람이라도 일하라고 하셨지만.
나와 남편은 온전히 어린 세 아이를 양육하기로 다짐했다.
우리는 부자가 아니다. 금수저도 아니고, 물려줄 재산도 많지 않다.
중, 고등학교에 가면 아이들 학비며 생활비며 이것저것 들어가는 돈도 많고
지출되는 금전적 문제가 많아서 미리 돈을 많이 모아놔야 한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물론 틀린 말씀은 아니다.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더 행복한 추억을 쌓게 해주는 것.
우리 부부는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더욱 어릴 때 일 수록 가족과 함께한 시간을 많이 심어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나'라는 존재는 엄마로 국한되지 않는다고 내 인생도 중요하다는 핑계로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다.
'나'라는 존재는 엄마로 국한되지 않지만
결국 나라는 것을 구성하는데 이제 엄마라는 영역이 생겼다는 것.
희생과 헌신을 할 수 있는 것조차도
누군가가 가장 바라고 원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득과 손실을 따져가는 이 세상에서
사랑도 그렇게 손익을 따져가며 사랑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진짜 사랑은 그것이 아니더라.
그걸 알게 해 준 게 아이들이었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날 미워하더라도.. 떠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끝까지 내가 헌신하는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감사였고 은혜였다.
아이 세 명을 키운다는 것.
경제적인 상황 즉, 가정형편 나와 남편의 상태 등을 고려하면
우리는 절대 완벽한 부모가 아니다.
계산하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결국 아이를 갖지 못한다.
우리 부부에게 계획하지 않았을 때 아이가 생겼었다.
소중한 생명은 계획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간절히 원할 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계획하건 계획하지 않았건 이 아이들이 그냥 우리 가정에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남편에게 허락되고 맡겨진 귀한 생명들이다.
이 아이들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