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노인이 됩니다.
이 소설은 여운조차 담백하고 잔잔하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들이 모두 그렇지만 이 단편소설도 그만의 감동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그가 그리는 노인 부부, "손끝까지 주름이 보이는" 그런 두 부부가 주인공이다.
모리스라는 파리에 사는 바쁜 친구의 부탁으로 대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간 친구가 두 노인 부부 - 모리스의 조부모님을 만난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특별하게 충격적이거나 파격적이지 않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마음을 울렁거리는 감동을 적시는 것일까?
노인들은 손자 모리스의 친구가 온 것에도 그렇게나 반가워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세월을 함께 살아온 부부로서 서로 닮아있다고 묘사된다. 심지어 할아버지가 머리를 할머니처럼 묶고 올리고 수녀복 같은 옷을 입으면 할머니와 구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 부분에서 첫 번째 감동이 몰려온다. 오랜 세월 함께 하여온 부부가 서로 닮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 아닐 거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살아왔으니 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할아버지가 모리스의 친구의 길 안내를 해준다고 나서는 그 걸음걸이를 멀리서 지켜보는 할머니의 눈에 그렇게 기쁨이 넘치면 말한다. "아직도 팔팔하시구려"
두 번째 감동은 소박하지만 베풀고 감동하는 그 노부부의 삶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스 손자의 친구에게 점심을 차려주느라고 법석을 떨면서 식탁 테이블을 준비한다. 대접한 것은 바게트와 우유인데 그 가족들의 일주일 치 음식인 것 같다고 한다. 노부부에게 고아원에서 데려와 함께 살고 있는 두 어린 소녀가 있는데, 그 소녀들과 심지어 카나리아 앵무새까지도 손님에게 준 음식들이 과하다고 하였다. 그만큼 소박한 부부의 삶이지만 그들은 부모 잃은 고아 소녀들 두 명이나 데리고 키우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책을 읽어주는 소녀들의 모습에서 목가적인 시골 풍경 속 한 장면이 펼쳐진다. 그 장면에 들어온 모리스의 친구는 분명히 그 선량하고 가난한 노부부의 만족하는 삶에서 짙은 감동을 받고 돌아간 것이다.
세 번째 감동은 역시 손자에 대한 사랑이었다. 할머니는 손자 모리스에게 주려고 숨겨둔 과실주를 담가놓았다. 할아버지가 높은 선반의 깊숙한 곳에서 수 십 년 묵은 술병을 끄내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그것을 건네주면서 기꺼이 마시는 모리스의 친구는 속으로 드러내지 않고 술맛이 좋지 않음을 독자들에게 고백하지만 결국 남김없이 마셔버린다. 그 술병에 그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들 젊은 세대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담아서 언제까지고라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추석이 다가왔다. 한 해의 가을 축제 같은 청명한 날씨 한가운데 민족 최대의 명절 휴일이다. 추석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우리들도 있고, 또 부모님께 찾아가는 아들딸들이 눈에 선하다. 노부모가 기다리고 있는 고향이다. 고향 집에서 부모님 댁에서 한가위는 알퐁스 도데의 <노인들>에 등장하는 그 술병을 간직하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추석맞이 즈음하여 늙으신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잘 차려진 음식이 아니라 소박한 테이블이라도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가는 이야기들 정겹게 도란도란 나누고 싶어진다.
10년 뒤에 우리 또한 서로 닮아버린 초로의 부부가 되어 자식들이 찾아와주기를 기다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 그 한가위가 다시 오면 덕담 같은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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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것만 보는 사람 vs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글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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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9. 15. 3:26
세상을 큰 것만 보려고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산 정상에 오르거나 그린 홀에서 32홀을 돌면서 골프를 즐기는 것에 기쁨을 만끽하였습니다. 그는 해외여행을 미국, 유럽의 럭셔리 호텔로만 가야만 여행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술을 마셔도 독주 - 중국의 고량주나 위스키 보드카를 마셔야 술맛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그는 가장 큰 꿈을 꾸었기에 늘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야심을 갖고 성장하려고 했습니다. 한때 그는 업계의 탑이었고 정상을 지키는 것에 다른 모두가 우러러보는 그 자리에 있음을 자랑스러워하였습니다.
그의 승승장구는 분명히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청중들은 그를 환호하였고 그의 성공 스토리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었습니다. 화려한 그의 커리어와 성공의 길에 늘 수식어가 따라붙었습니다.
'한 국가의 경제를 이끄는 선장' '한 국가의 비전을 만드는 리더'
'인류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선각자'
그 성공자들은 이렇게 설득하고 동기부여를 불러일으킵니다.
'정상에서 만납시다!'
젊어서 수백 명이 모이는 동기부여의 컨벤션 모임에서 이러한 문구들 스피치를 만났었습니다.
큰 것을 꿈꾸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위인 전기에서 만나는 인류의 위인들은 큰 것을 볼 수 있고 꿈꿀 수 있었고 그에 따른 노력과 행운을 가진 선각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발명과 발견, 그들의 언행이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위대한 사람들이 이끌어왔던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위대한 성취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 않습니까?
평범한 보통 사람이 중년이 되었습니다. 지극히 특별할 것 없는 직장인으로 중산층으로 살아왔습니다.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것도 없고, 특별하게 보이는 재능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큰 꿈을 갖고 살아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중산층 밑의 나락에 떨어지지 않도록 가장의 역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로서 떳떳하고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열심히 사는 모습에서 가족들에게만이라도 인정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가족은 세상의 모든 것이었지요. 그렇게 큰 꿈이 아닐지라도 작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세상은 소시민, 보통 사람들이 잘 살 수 있으면 행복할 겁니다. 인류의 진보를 위한 큰 꿈을 꾸지 않더라도 개인의 작은 꿈을 위해서 열심히 버티고 견디면서 하루하루를 땀으로 채워가는 사람들이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하루하루 출퇴근길의 적은 성취감, 자신의 소박한 꿈, 가족을 위한 꿈 그렇게 작지만 나를 위한 꿈으로 살아갈 동력을 갖게 됩니다.
세상은 위대한 위인들, 영웅들, 슈퍼 리치 (super rich) 리더들의 시대에서 민중의 시대, 보통 시민들, 중산층의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보통 개개인들이 꿈꾸는 것이 모여서 거대한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풀들이 서로에게 의지하고 연대하여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고 그 바람결을 타고 파도를 만들 수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류의 유토피아, 인류 문명의 발상부터 진화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소재로 글을 쓰는 작가의 욕망이 있습니다. 우주만큼 거대한 스케일로 지구의 고대시대의 다스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힘까지 다루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그렇게 웅장한 스케일의 대서사시를 적은 작가들을 공경합니다.
하지만, 일상의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글감은 하루하루 출퇴근의 길에서, 일터의 주변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날마다 만나는 산책길의 풀 한 포기에서 쏟아집니다. 놓치기 싫고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는 생활 속의 발견들이 좋은 글감이 됩니다.
거대한 꿈을 간직하면서도 섬세한 일상을 만나고 기록하면서 깨달으면서 성장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슴을 펴고 멀리 높이 볼 수 있도록 하면서도 손가락 끝에서 느끼는 감촉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살겠습니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작은 존재들에게 깊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으면 살고 싶습니다. 악기의 소리들 각각이 소중함을 알고 있습니다. 각자의 악기들을 갈고닦아 연주하여 오케스트라를 이루고 조화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실내악, 밴드의 악기 연주를 위해서 갈고닦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소규모의 공연을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작지만 감동적인 공연을 위해서 멈추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