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하여 용기를 가지세요!
돈키호테는 정신을 자신의 상상적인 세계에 몰입하여 현실을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의 세상에 사로잡혀서 그는 현실과 단절할 정도로 그 자신의 편력 기사의 사명에 온몸을 던졌지요. 그는 현실이 마법에 가려져서 보인다고 자신의 신념을 믿었습니다.
돈키호테의 모험 이야기들 -
주막집을 성으로 주막집 주인을 성주로 생각하여 기사 작위를 받는 장면,
양 떼들의 행렬을 전쟁이 일어났다고 그들을 물리쳐야 한다고 창칼을 휘두르는 장면,
그 유명한 풍차 이야기부터 포도주를 거인으로 맞싸우는 장면까지
돈키호테는 두들겨 맞으면서 이빨이 부러져서 음식을 씹을 수 없게 되면서도
심지어 돌에 맞는 돈키호테의 이빨들이 우수수 옥수수알처럼 떨어져도
그의 신념과 기사도의 용기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기사도 정신을 지켜내면서 자신의 정의로운 환상에서 살았답니다.
독자들은 그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에서 폭소를 터뜨리게 되지만 그 폭소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왜?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비록 어리석게도 허황된 꿈을 좇았지만, 이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몇 분 있으면
좋겠다는 질문을 보내고 답하게 됩니다.
"꼭 모두가 보는 것만 똑같이 보아야 하는 것일까?"
"다르게 보고 다르게 해석하면 안 될까?"
"그렇게 세상의 통념, 보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서 상상의 세계 속에 나를 찾으면 안 될까?"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주는 자극적인 희극이 <라만차의 돈키호테>였습니다.
그에 비해서 산초는 현실과 마법의 세상의 경계에 있었지요. 그는 주인님, 돈키호테의 유일한 수행원이 되어서 충실하게 그를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주인에게 정신 차리라고 조언도 하고, 현실을 구분하라고 다구치기도 합니다. 그런 산초는 사실 돈키호테 주인에게 보상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따라다니는 인물이지요. 주인님의 못 말리는 행동에 기가 막히면서도 돈키호테를 아끼고 돌보는 산초의 충실함에 감동을 받게 됩니다. 산초는 충실함과 현실적인 계산의 경계에서도 자신의 직분을 지켜가려고 합니다. 주인의 잘못된 판단에서 산초까지 몰매를 맞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돈키호테의 곁을 지키면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처음 산초와 돈키호테가 모험을 떠났을 때,
성이라고 상상하던 주막집에서 첫날밤 주먹질이 오고 간 그때,
돈키호테는 성주의 딸, 공주라고 생각하였지만,
산초는 그 가정부와 주먹질을 나누었습니다.
그곳에서 먹을 것과 잠을 공짜로 얻은 것에 만족하는 산초는 돈키호테보다 훨씬 더 우스운 희극배우입니다. 아마도 오늘날 개그쇼에서 주먹으로 맞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호탕하게 웃게 만드는 첫 번째 희극의 원조가 돈키호테의 이야기일 겁니다. 수없이 맞고 또 두들겨 맞는 돈키호테, 산초에게서 우리는 웃음을 머금게 되지만 동시에 그들의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저 인간이 인간인지 원수인지 구분이 안된다."
처음에는 이렇게 주인 돈키호테를 평가했던 산초는 수많은 삶과 죽음의 모험에서 살아돌아옵니다.
그 둘은 끝내 고향 라만차로 함께 돌아옵니다.
돌아온 산초는 아내에게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거야. 우리가 또다시 모험을 떠나면, 그때는 큰 섬이나 어떤 나라의 영주가 되어 있을 테니까..."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루려고 하는 돈키호테의 꿈에 참여하게 됩니다.
산초는 그저 주인님 돈키호테의 꿈을 믿고 따랐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또한 돈키호테와 같은 꿈을 갖게 되었을 겁니다. 심지어 돌아온 산초는 아내에게 유식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그 숱한 경험과 모진 두들겨 맞음, 상처가 생기면서 서로 비슷해집니다. 초현실주의자 돈키호테가 현실주의자 산초와 만나서 서로 중간의 어디쯤을 만들어냅니다.
오늘날 '풍차에 돌격하는 사람'하면 돈키호테 원조 이야기가 대명사가 됩니다. 네덜란드의 풍차가 유명해진 것은 돈키호테의 스토리에서 일부 빚을 졌다고 생각됩니다. 이전의 풍차는 더 이상은 그 역할을 못하지만 돈키호테의 이미지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영원한 기사도 정신으로 남을 겁니다.
중세의 낭만적인 기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돌진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입니다.
스토리의 끝장면에 부상에서 회복된 영원한 기사, 라 만 차의 돈키호테는 또다시 기사의 모험을 위해서 불의를 보고 못 참는 정의의 사도로 모습을 여운으로 남깁니다.
"돈키호테는 사라졌다. 슬픈 얼굴의 기사 라만차의 소문만 무성하였다."
이렇게 이 유명한 희극 소설의 엔딩이 끝납니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돈키호테 작품>을 남긴 미겔 데 세르반데스(1547~1616) 작가에게 우리가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뮤지컬 돈키호테 <이룰 수 없는 꿈>의 가사입니다.
영어판 가사
영어판 가사 번역
한국어판 가사
To dream the impossible dream
To fight the unbeatable foe
To bear with unbearable sorrow
To run where the brave dare not go
To right the unrightable wrong
To love pure and chaste from afar
To try when your arms are too weary
To reach the unreachable star
This is my quest, to follow that star
No matter how hopeless, no matter how far
To fight for the right
Without question or pause
To be willing to march
Into hell for a heavenly cause
And I know if I'll only be true
To this glorious quest
That my heart will lay peaceful and calm
When I'm laid to my rest
And the world will be better for this
That one man scorned and covered with scars
Still strove with his last ounce of courage
To reach the unreachable star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것,
이길 수 없는 적수에 맞서는 것,
견딜 수 없는 비탄을 견디는 것,
용사들도 꺼리는 곳으로 향하는 것.
바로잡을 수 없는 불의를 바로잡으려는 것,
멀리서도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을 간직하는 것,
지쳐 쓰러질 것 같아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
닿을 수 없는 별에 닿으려는 것.
이것이 나의 여정,
아무리 멀고, 아무리 기약없는 길이라도
그 별을 따르려는 것
의심도 망설임도 없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
고귀한 이상을 위해서
지옥까지라도 기꺼이 행진하려는 것
그리고 나는 알고 있소, 이 영광스러운 여정에
진실된 마음으로 임한다면
훗날 내가 안식을 찾았을 때
내 마음에 평온과 안정이 있으리란 것을
그리고 세상은 이로써 더 나아질것이오
비웃음당한, 상처로 뒤덮인 그 한 사람은
마지막 한 줌의 용기가 다할 때까지 변함없이 분투할 것이오
닿을 수 없는 별에 닿기 위해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