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적인 모임, 독서모임 응원합니다.
에피쿠로스는 신과 같은 추종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통에 시달리는 인간이었을 뿐이었지요.
에피쿠로스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에서 철학을 배웠고, 원자론을 펼친 데모크리토스 철학가의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에게도 철학을 배우지 않고 스스로 철학 하여 그의 학파를 이루었다고 하였습니다.
스토아 철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동시대에 탄생한 에피쿠로스 철학을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에피쿠로스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에게 영향을 준 기원전 4세기 말~3세기 초의 철학자였습니다. 그의 철학, 그의 학파의 철학에 대하여 오해를 풀어드리려고 이 글을 적습니다. 그의 철학은 기존의 고정 관념을 뒤엎는 획기적이지만 공감되는 인간적인 면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 오해,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에 탐닉하는 철학이다?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의 선입관에 있는 쾌락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찰라, 순간적인 쾌락이 아니었습니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장기적인 쾌락을 위한 것으로 궁극적으로 아타락시아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고통을 피하고 정신적인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정신적인 동요 없이 평정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두 번째 오해, 에피쿠로스 학파는 철학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맞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에게 철학은 행복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일체의 종교적 미신을 척결하고 이성의 인식에 입각한 곳에 정신의 동요 없는 평정심의 행복 - 아타락시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철학보다 중요한 그들의 가치였습니다. 철학을 위한 철학으로 이성에만 치우치는 것도 반대하였습니다. 삶의 철학이어야 합니다. 에피쿠로스는 삶의 철학 생의 철학이라고 구분되는 19세기 쇼펜하우어, 니체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플라톤의 철학, 2000년이 지배한 형이상학을 위한 철학에 정면으로 비판한 겁니다. 인간의 본성을 위한 삶의 철학을 내세운 것입니다.
세 번째 오해, 에피쿠로스는 위대한 인간이었고 그는 요로결석 고통을 극복하면서 죽었습니다.
그는 신처럼 받들어졌지만 말년에 너무도 심해진 고통에 연약한 육체의 병을 가지고 죽게 되었습니다.
에피쿠로스(Epicurus, B.C.341~B.C.271)는 말년에 요로결석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지요. 그럼에도 육체적 고통이 결코 그의 철학 사상의 수행 - 정신적 쾌락을 앗아가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에피쿠로스는 따뜻한 물이 가득한 욕조에서 포도주 한 잔을 들이켜고 행복하게 이 세상과 작별을 고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루지 못하는 죽음이었습니다. 그의 유언장에는 자신의 노예들을 해방시켜 자유롭게 하라는 내용도 감격스럽게 담겨있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벗들이여, 안녕. 부디 내가 가르친 것을 잘 기억하기를.”
네 번째 오해, 에피쿠로스는 신분이 평등한 모임을 받아들였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여성, 노예들까지 제자로 받아들이는 혁신적인 사상가였습니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06년 아테네에 정원 딸린 집을 구입해서 여러 제자들을 모아서 가르쳤지요. 그의 제자들 중에는 여성과 노예 출신들도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귀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남녀 차별, 신분 차별을 철폐하였던 혁신적인 사상가였습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를 비웃던 사람들도 에피쿠로스와 제자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자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그들의 따뜻한 지지와 지원을 받았지요.
에피쿠로스가 썼던 논고들은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그가 제자들, 친구들과 교류한 물리학, 천문학, 기상학, 윤리학을 논했던 편지들이 남아있습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위대한 철학자들의 생애> 안에 담겨 그의 사상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에피쿠로스학파 철학의 전개에 있어서 편지가 얼마나 중요한 방편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섯 번째 오해, 고대 그리스의 신을 버렸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그리스의 신들을 믿던 유신론자이지만, 어떠한 신도 인간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에피쿠로스학파의 믿음은 인간이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생각의 기회를 줍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모두 감각에 달려 있지만, 죽음은 감각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올바른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죽게 되어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삶에 무한한 시간을 부여함으로써 가 아니라, 불사에 대한 동경을 제거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 따라서 죽음은 우리에게 나쁜 것들 중에서 가장 전율할 만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지 않고,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과도 관계가 없고 죽은 자들과도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고, 죽은 자들은 그들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노케이우스에게 보낸 편지』
"에피쿠로스에서 정신이나 신은 물질의 현상으로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의 효과나 그 운동의 원인으로서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에피쿠로스의 신은 유물론자들이나 관념론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신과는 달리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생명체적 존재로, 그리고 그것이 아타락시아(ataraksia)의 행복과 선의를 지니고 있는 현실적 존재로 나타난다. 원자론자로서 신의 개념과 종교를 인정하는 에피쿠로스의 이러한 신에 관한 사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에피쿠로스가 전제하는 원자와 공허, 그리고 그것의 운동의 의미가 초기 원자론자들이 내세우는 원자와 공간, 그리고 그 운동원인 개념의 단순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각각 분화되고 질적으로 다른 이중적인 의미들을 지니게 됨에 따른 것이다. 그에 있어서 공간은 공허(kenon)와 실재하는 장소(chora)로 나뉘고, 원자(atom)라는 존재도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만물의 존재를 이루는 성질들을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거나 다양한 질적 차이를 지닌 다양한 원자들, 특히 원자의 운동 방식에 있어서 무게에 따르는 필연성에 따르는 원자 외에 자유의 원자의 경사운동으로 분화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데에서 설명될 수 있다. 에피쿠로스가 원자론을 끌어들여 자신의 사상을 확립한 것은 원자론이 자연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윤리나 종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하여서였다는 것은 소크라테스와 같은 동기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소크라테스의 미래를 지향하는 오르페우스 종교의 이원론적인 것과는, 달리 현생만이 존재하고 현생의 쾌를 인생의 목적으로 하기 위해서이다."
- 에피쿠로스의 원자론과 신의 문제 / 충남대학교 송영진 저자의 글 중에서
저도 글벗들과의 독서 모임에서 꼭 에피쿠로스의 모임을 실천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모든 세대가 어우러지는 글벗 모임입니다.
오로지 인문학적 소양과 실천을 위해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공동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발표하며 서로 북돋아 주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현자, 에피쿠로스에게 배운 것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하단 링크 클릭하시면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모임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인문학적 독서와 글쓰기에 진심인 분들만요.. 오늘 금요일 저녁에 참여해 보세요! <인문학 자기 계발>의 향기에 빠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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