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연재> 제6감각 영감,직감, 통찰력 보세요

글쓰기 영감 인문학에서 배우다.


보기 싫은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가령 추하고 더러운 것을 굳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보아야 하는데 볼 수 없는 사람은 선택한 겁니다. 추해서 보기 싫거나 관심이 없겠지요.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음의 눈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세요?


보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


볼 수 있는 사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






들을 수 없는 사람도 선택의 결과입니다.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듣지 않을 경우이지요.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굳이 듣고 싶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또한 들을 수 있는 세상의 소리에 문을 닫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듣지 못하는 것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소리이고 들리는 세상 너머의 소리를 마음의 귀로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듣고 싶으세요?


들을 수 없는 사람.


들을 수 있는 사람,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람,






글을 창작할 때, 글을 집필할 때도, 예술작품을 창작할때처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에 영감을 받습니다. 영혼이 부르는 그 영감이 제 6감으로도 명명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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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것은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고 싶은 꿈의 결과입니다.


글을 쓰면서 상상의 세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눈과 귀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질 수 있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는 글로 만질 수 있는 형상을 드러냅니다.




사람은 짐승과 다릅니다.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을, 냄새를 맡고 맛을 느끼는 것을 표현할 수 있기에 다릅니다. 사람은 창작을 해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오감과 그 너머로 직감할 수 있는 것을 공유하는 능력입니다.


거기에 마음이라는 제6감이 있습니다. 이점도 동물과 다른 사람의 천부적인 재능, 아니 사람만의 영감이 발달시킨 신에게 다가서는 영역입니다. 글을 쓰는 것도, 예술을 하는 것은 사람의 5감을 넘어서는 인사이트를 표현하는 작업입니다.




마음으로 직관을 넘어서서 통찰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관조하고 통찰하면 세상이 달리 보이고 달리 듣게 됩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이 모두가 아닌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음의 눈과 마음의 귀를 열겠습니다.


보이는 것 듣는 것 이외의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듣겠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내면 언제나 배울 것 깨닫는 것 담아내는 것들이 차고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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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질서라도 우주는 질서 있게 움직입니다.


무질서한 삶의 질서를 찾아내는 지혜를 갖고 싶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선각자들은 그 지혜를 알고 있었습니다.


인문학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질서는 다른 형식으로 우리들 삶에 존재하고 있었던 겁니다.


때로는 예술이란 형식으로, 철학의 사유로, 과학의 언어로 그 질서를 배우게 됩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질서를 알기 위해서 지혜를 찾아왔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의 질서, 문장의 질서 속에서 감성과 지성을 담아냅니다.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도 모두 글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남들이 보려 하지 않는 것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도


읽고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작가들, 예술가들의 영역은 그런 것이지요.


글 속에 담아내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 - 창작작가는


5감을 넘어선 극도의 정신력(제6감각)을 갖춘 예술의 영역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지혜를 갈고닦는 작업의 통찰력을 위해서 인+문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인+문학이 융합 통섭이 되면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질서의 세상을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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