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육아 적응기
나는 시골 마을의 한 관사에서 살고 있다. 직업적으로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하기에 여러 번의 이사를 했고 결혼 5년 차에 4번째 집에 살고 있다. 언제 이사를 가게 될지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었고 집의 크기도, 부엌의 모습도, 방이 몇 칸이나 될지도 알 수 없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데 있었다. 주어진 공간에 짐을 맞추면서 살아야 하는 삶은 결혼과 함께 일어난 일인 줄 알았다. 돌이켜보니 결혼하기 전 선수 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시합 출전과 훈련으로 어려 도시를 많이 다녔다. 그때는 가방 하나에 맞춰 짐을 꾸렸다. 대학 시절에는 원룸 형태의 자취방에서 살았고 방의 크기만큼 짐을 들여놓았다. 별 불편함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때의 공간과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혼자’ 일 수 있었던 공간이 지금은 ‘내’가 아닌 ‘우리’의 공간이 되었기 때문일 거다.
나는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다. 물건마다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게 좋았고, 자리가 부족해지면 불필요한 물건을 비워 다시 빈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나만의 공간이 아닌 ‘우리의’ 공간이 되고 난 뒤에는 내가 만든 ‘자리’가 의미 없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오늘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다. 두 아이와 남편이 함께 하는 공간은 내가 정리를 한다고 해도 금세 세 사람의 손에 의해 마구 흐트러졌다. 그때마다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곤 했다.
두 아이가 태어난 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작은 집이 아이들의 물건으로 꽉 채워져 갔고, 더 이상 물건을 담아낼 공간이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짐이 쌓였을 때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이사 가게 될 집에 물건들이 다 들어가지 않으면 어쩌나 싶을 때마다 ‘우리에게 오래 머물 수 있는 집이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물건이 늘어가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이 지금 당장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알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버렸다. 침대도, 소파도 버리고 공간을 만들었다. 시기가 지난 장난감을 정리하고 생긴 공간엔 큰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들였다. 입지 않는 옷들은 정리해 기부했고 그 공간은 아이들의 옷으로 채웠다. 신혼 초 남편과 함께 앉아 공부하려고 구입했던 2인용 책상 중 한 켠을 비웠다. 그러면서 조금씩 물건이 쌓이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공간은 편안하고 여유 있는 공간이다. 그렇게 시작된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어수선했던 공간을 비우며 마음의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누군가는 물건을 채우면서 마음의 풍요를 경험한다고 하지만 나는 비어 있는 공간을 볼 때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이제야 조금씩 내가 상상하는 공간, 내가 원하는 공간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앞으로 내게 남은 과제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우리’의 공간이 된 네 가족이 모두 즐겁게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비움을 유지하면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이사를 가야 할 때 트럭 한 대에 딱 맞을 만큼의 짐만 가지고 살고 싶다. 가득 찬 물건을 정리하는데 쓸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우리의 공간에서 온전하게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남편이, 아이들이, 내가 이 공간에서 함께 여유를 누리며 살고 싶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