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음을 걱정하는 당신에게
빅터 프랭클은 삶이 항상 과제를 던진다고 말했다. 맞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끝없이 과제를 받고 해결해 나간다. 그런데 삶의 과제가 가혹하다고 느낄 때는 없는가? 신입사원이었던 20대의 내 눈에 비친 40대 회사 선배들이 받은 과제는 꽤 가혹해 보였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후 얼마 되지 않아 회사는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인원 감축이 결정됐고,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권고사직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배들은 매일 밤 술집을 찾았다. 그들의 입에선 똑같은 한탄이 흘렀다. ‘어두워진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나는 구조조정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회사를 그만두었다. 선배들로부터 느낀, 실존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고민을 풀기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그럴 때마다 기시감을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미래’와 ‘시작’에 대한 불안감을 읽었던 이유였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미래와 새로운 시작에 손을 떨곤 했다.
어쩌면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한국 사회는 유독 ‘적기’에 예민하다. 20대에 무조건 취업하고 30대까진 결혼하고 40대 전에 집을 사야 한다는 정해진 각본 같은 게 있다. SNS를 보면 각본에서 벗어난 사람을 힐난하며 조롱하는 문구가 눈에 띈다. 인생 초반에 성과를 거두지 못한 삶에 실패란 낙인을 찍는 모양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 삶도 잘못됐다는 기분이 올라왔다.
하지만 생각하면 참 웃긴 일이다. 인간 존재는 ‘개성’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삶의 패턴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실제로 역사 속 인물들을 보면 삶의 기회는 각기 다른 순간에 찾아왔다. 심지어 기대수명이 80년을 넘어선 시대다. 80년의 삶을 20-30년으로 점치기엔 시기상조가 아닌가.
이런 문제의식이, 이 글을 기획하게 된 시작점이었다. 40대, 50대, 그리고 60대가 과연 늦은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도록 길들여진 것일까? 세상은 늦었다 하는데 내 머리는 아니라고 소리쳤다. 덕분에 나는 삶에 저마다의 시간이 존재할 것이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글을 기획하고 써 내려가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두 사람의 이야기로 가설을 입증하기에 어려웠던 탓이다. 그래서 기록조차 희미한 시간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녔다. 약 80명 정도의 이야기를 모으고 나서야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40대 이후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는 것. 그것도 아주, 극적으로 말이다.
힐랜드 샌더스는 65세에 파산 직전이었다. 그에게 남은 건 사회보장연금 105달러가 전부. 그는 삶의 마지막 도전을 위해 자동차를 몰고 전국을 돌며 치킨 레시피를 팔기 시작했다. 수많은 거절을 마주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첫 프랜차이즈가 유타주에 문을 열었다. 지금의 KFC가 탄생한 일화다.
그랜마 모제스(본명 안나 메리 로버트슨 모제스)는 힐랜드 샌더스보다 더하다. 열 명의 아이를 키우며 평생 농장을 일궜던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자수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관절염이 그녀의 꿈을 짓밟았다. 바늘조차 끼우지 못하는 그녀에게 가족들은 그림을 권유했다. 그녀는 76세에 처음 붓을 잡았고, 78세에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1953년, 그랜마 모제스는 93세의 나이로 ‘화가’로서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다. 그녀의 꿈은 101세까지 이어졌고, 160개 이상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비단 외국의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에도 늦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고려의 강감찬은 36세에 과거에 급제했다. 당시 평균 급제 나이가 24-25세였으니, 10년이나 늦은 나이다. 그런데 그에게 벼슬길이 활짝 열리진 않았던 것 같다. 급제 후 약 20년간 그의 이름은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1018년 귀주대첩에 참전한 그의 나이는 70세. 이후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이야기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이야기도 있다. 그녀는 40대까지 평범한 주부였다. 다섯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에 치이는, 정말 평범한 주부. 그런데 어느 날, 자신 안에 휘몰아치는 이야기를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저녁마다 원고지를 펼쳤던 그녀는 1970년 39세의 나이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부문에 「나목」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그녀의 기억에 따르면 수상작 발표 후 기자들이 왕왕 집에 찾아왔다고 한다. “주부가 정말 이 소설을 썼느냐”며 묻기 위해서였다. 이후 80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박완서 선생은 장편 15편, 단편 100여 편, 산문 660편을 쓰며 한국문학의 거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사람들은 꽃이 자신의 계절에 절정을 맞이하듯 저마다의 시간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의 성공 요인을 하나로 귀결할 순 없다. 하나로 통일할 수 없는 다양한 요소가 그들의 삶에 기회를 부여했다. 다만 공통점은 있다. 나이를 장애삼지 않고 용기를 내었다는 점.
그래서 심리학자 칼 융은 중년을 ‘개성화의 시기’라고 일컬었다. 인생 전반부가 세상에 적응하는 시간이었다면 후반부는 진짜 자신을 찾는 시간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앞으로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늦었기 때문에’ 가능성을 찾은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들도 쉽지 않았다. 주변 사람의 만류가 마음을 흔들었고, 수없이 넘어지며 좌절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 의욕을 꺾어버린 일도 있었다. 도전을 앞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나의 길을 가려면 좌절의 벽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선택했다. 시작을 선택했고, 지속을 선택했으며, 희망을 선택했다. 덕분에 나이는 그저 시간이 흘러 새겨진 나이테에 불과했다. 오히려 무기로 삼은 경우도 있다. 오랜 세월 공고히 쌓아 올린 자신의 뚝심과 경험이 강력한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한국 중소벤처기업부의 통계를 보면 40대 이상 창업자가 전체의 58%를 넘는다. 그리고 그들의 5년 생존율은 34.2%다. 나이의 높고 낮음이 성공의 척도가 아님을 숫자가 증명하고 있다.
나는 통계청이 증명한 숫자를 이야기로 풀어보려고 한다. 내가 펼칠 이야기 보따리엔 시공을 초월한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자그마치 60명, 그리고 60개의 이야기.
그들이 전해 줄 메시지는 분명하다. 시작은 언제나 지금이라는 것. 당신이 스물이든, 서른이든, 마흔이든, 쉰이든, 예순이든, 일흔이든, 그 이상이든, 오늘 시작한다면 오늘이 바로 당신 인생의 새로운 원년이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주저할 것이 없다.
글을 쓰며 나는 끝없이 희망의 씨앗을 담을 것이다. 앞서 길을 밝힌 그들에 힘입어 우리 모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용기를 내기를.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항상 이 말을 던질 것이다.
‘절대 늦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하기 좋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