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나에겐 도전이었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한 노인이 낡은 양복 상의를 꺼내 입고 붉은 넥타이를 조심스럽게 맨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는 그. 천천히 손을 든 그가 주름진 자신의 얼굴을 매만진다. 65년의 세월.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던가. 잠시 지나간 것들에 회한을 품는다. 그러나 흘러간 세월에 질 순 없다. 문 앞으로 다가선 그의 얼굴이 햇볕으로 밝아졌다. KFC 할아버지로 알려진, 할랜드 샌더스였다.
샌더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인생이 펼쳐진다. 여섯 살에 잃은 아버지와 조기에 그만둔 학교는 서막이었을까. 그는 농부, 증기기관차 화부, 보험영업, 페리선 사업을 거쳤지만, 그 무엇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소위 말하는 지독한 불운의 나날들이었다.
그럼에도 샌더스는 알고 있었다. 무언가를 하고 실패하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실패하는 건 다른 일이라는 것을.
50세 무렵, 그는 또 하나의 사업을 시작했다. 켄터키주 코빈 마을에서 시작한 작은 주유소와 식당. 그는 여행객들에게 후라이드 치킨과 남부 가정식 요리를 선보였다. 특히 후라이드 치킨이 인기였다. 9가지 향신료를 써서 압력솥에 튀겨내는 방식이 돋보였던 음식. 사람들은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샌더스의 식당을 일부러 찾아오곤 했다.
1939년 요리 평론가 던컨 하인즈의 칭찬을 기점으로 그의 식당은 미국 전역에 알려진 맛집이 됐다. 탄탄대로가 열렸다. 1950년 켄터키 주지사가 명예 대령 칭호를 주는가 하면, 1952년에 유타주에서 첫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의 인생에 또 한 번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몇 년 뒤 식당 부근에 새로운 고속도로가 만들어졌다. 고속도로는 그의 식당을 지나쳐 마을로 통했다. 교통량이 고속도로에 몰리고, 손님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1955년, 샌더스의 식당이 경매로 넘어갔다. 또다시 닥쳐온 실패의 심연. 마치 운명이 고의로 그를 굴욕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듯했다.
그의 나이 65세. 보통 사람이었다면 모든 것을 내려두고 휴식을 선택했으리라. 하지만 샌더스는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트럭에 온갖 조리도구를 싣고 핸들을 잡았다. 전국의 식당을 돌며 직접 요리하고, 그 자리에서 프랜차이즈 계약을 제안했다. 1009번의 거절을 당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속설이 있지만, 꽤 많은 거절을 당했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프랜차이즈를 진행하며 새로운 인연도 만났다. 훗날 햄버거 프랜차이즈 웬디스의 창업주가 되는 데이브 토머스였다. 당시 샌더스가 프랜차이즈를 맺은 식당의 주방장이었던 토머스는, 이후 KFC 지점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어 몇 가지 조언을 한다. 대표 메뉴에 집중하고, 샌더스가 직접 광고에 출연하라는 것.
토머스의 조언을 새겨들은 샌더스는 날개를 달았다. 1964년 73세가 되었을 때 KFC 점포는 전 세계 600여 개로 늘어났다. 늘어난 점포 수만큼 들여야 할 힘도 늘었다. 노구의 샌더스가 힘에 부쳤으리란 점은 쉽게 추측할 수 있겠다.
그즈음, 투자가들이 샌더스를 찾았다. 샌더스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지역 사업가 존 Y. 브라운과 잭 매시에게 200만 달러에 지분을 팔고, 자신의 초상권에 대한 로열티를 요구했다.
늦은 나이였지만 대성공을 거두며 큰 부를 축적한 샌더스. 그의 다음 행보는 어땠을까? 별장을 짓고 보트를 구매해 안락하고 평온한 삶을 구가했을까? 아니었다. 그에게 성공이란 결과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흐름의 일부였던 듯하다.
샌더스는 회사를 넘긴 뒤에도 KFC에 지대한 관심을 두었다. 특히 품질 문제에 민감했는데, 프랜차이즈 지점들이 원가 절감에만 집중하자 진심으로 분노했다. 그는 본사 앞에서 “요즘 애들은 내 치킨이 뭔지 몰라”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고 기자들에게 “소스가 벽지 풀과 다름없다”며 비난했다. KFC 지점을 기습 방문해 제품을 먹고 바닥에 집어던지며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이 문제로 KFC가 샌더스를 명예 훼손으로 고발하기까지 했지만, 샌더스는 굴하지 않았다. 그는 본사의 원가 절감에 대응하고자 오리지널 레시피로 켄터키에 새로운 식당을 열었다. 이 식당으로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계획했다. KFC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을 터. 이후 KFC와의 원만한 합의로 그 식당은 프랜차이즈로 만들지 않았다.
이후 샌더스는 90세로 영면하기까지 하얀 양복의 할아버지라는 애칭과 함께 KFC의 얼굴로 살아갔다. 그리고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는 KFC. 어쩌면 그가 지키려 했던 자부심이었기에 KFC가 ‘치킨’의 대명사 중 하나로 남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샌더스의 삶을 보며 사람들은 ‘뒤늦은 성공 신화’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성공과 신화라는 키워드에 정신이 팔리면 중요한 사실을 놓치기 마련이다. 그의 일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영광의 뒤편에 존재하는 오기와 고집, 그리고 고독과 외로움이 지치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우리는 '용기'와 '고집', '신념'이란 단어에 쉽다는 평가를 내린다. 우리의 일상을 들여보면 절대 쉽지 않은 일인데도 말이다.
때로 사람들은 ‘왜 굳이 그 나이에 힘든 길을 택하느냐’며 힐난한다.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사람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이렇듯 차갑다. 비난과 냉소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삶이란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인간의 삶을 두고 각본을 정해두더라도, 정해진 각본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세상은 다양성이란 단어를 품어낸다.
할랜드 샌더스의 65세는 은퇴가 아닌 시작이었다. ‘은퇴’가 적힌 세상의 각본 위에 그는 시작이란 단어를 새겼다. 그에게 트럭 운전대를 잡은 하루는, 노구의 몸이 힘겹게 버틴 하루가 아니라 간절하고 진실한 하루였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늦었다고 망설일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타인의 차가운 시선이 나의 인생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자각한다. 어쩌면 그때가 가장 시작하기 좋은 시기일지 모른다. 그리고, 시작하기 좋은 시기는 내가 안다. 누가 정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샌더스의 손에는 ‘치킨 레시피’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레시피는 그의 인생을 바꿨다. 우리는 어떤 ‘치킨 레시피’를 들고 있을까. 누구나 자신만의 경험을 담은 다른 이름의 ‘치킨 레시피’가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괜찮으니, 세상을 향해 흔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한 번의 흔듦에 불이 켜지지 않아도 괜찮다. 적어도 그 흔들림이 내 삶에 작은 파동을 일으킬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