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을 인내한 자의 성취
도전의 서사에 성취의 깃발만 꽂을 수 없다. 만약 역사에 성취의 깃발만 꽂혔다면 인류의 담화는 영웅담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인간의 서사에는 실패의 잔해가 깔려 있다. 완성하지 못한 시도들, 고꾸라져 흩어진 좌절의 파편들, 마르기 전에 번져버린 인내의 흔적들. 대체로 도전은 영광보다 끝을 다하지 못한 발자취로 남는다.
삶에 광영만 비추리라 기대하지 않더라도 지난한 시간의 조임은 사람을 피로하게 만든다. 닿지 않는 열매를 향해 손을 뻗는 인간의 단상. 언제 닿을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기인한 긴장감. 몰려드는 피로감 속에서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의심한다.
조선의 선비들도 그랬다. 직업의 자유가 희박했던 시대. 그들은 일찍이 깨달았다. 집안의 번영과 자신의 명예는 손끝에 달려 있다는 것. 대체로 모든 선비가 여덟 살 무렵부터 붓을 잡은 이유다. 연속된 낙방에 십수 년간 시험장에 앉은 그들은 여전히 문장 한 줄에 인생을 걸고 있었다.
과거시험은 냉정했다. 문과 급제자의 평균 나이는 서른여섯. 드물게 10대 합격자가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 수십 년을 학생으로 살았다. 수만 명이 붓을 들었고 단 33명이 급제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낙방한 사람은 허비된 시간 속으로 스며들었다. 역사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사람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사라지지 않고 남은 합격자 행렬 속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조선시대 전체 문과 급제자 중 최고령 합격자, 김재봉(金在琫). 그는 90세가 돼서야 급제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861년, 철종 122년. 한 노인이 늙은 몸을 이끌고 시험장에 들어섰다. 장면을 기록으로 남긴 이는 없지만 철종실록은 문장 한 줄을 실었다.
철종께서 하교하기를 “신방 생원 김재봉은 나이가 만 90세이니 심히 희귀하여 특별히 사제(賜第)한다.”
사제(賜第)란 임금의 특별한 명령으로 급제자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일을 말한다. 노익장을 인정한 철종의 한 마디로 그는 드디어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조선의 첫 90대 합격자. 물론 ‘급제자와 동일한 자격’이었기에 벼슬자리를 제수하지는 않았다. 다만 의미는 남달랐다. 고령의 합격자가 쓴 붓 끝에서 ‘노익장(老益壯)’의 의미가 새로이 쓰였다.
이후 그에 관한 다른 기록은 찾기 어렵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과 평생 학문을 닦았으리란 추측만 떠오른다. 기록의 짧은 행간에서 한 가지 확신은 남는다. 그는 불확실한 가능성에 손을 굳히지 않고 인내에 몸을 걸었다는 것. 도전의 본질은 결과가 아닌 과정의 지속성에 있을 수 있음을 증명한 일이다.
사실 김재봉은 극단적인 예일 뿐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붓을 들었다. 실제로 40대 후반과 50대 급제자도 많았다. 화가로 유명했던 강세황은 64세에 과거에 합격했다. 그들이라고 왜 불안감이 없었겠는가. 극도의 긴장을 누르고 현재에 집중하며 자신을 믿는 자세가 그들을 합격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삶이란 결국 객관적으로 규정된 시간의 직선을 따라 정해진 지점에 깃발을 꽂는 일이 아니다. 내면을 두드리는 목소리를 따라 자신만의 계절을 기다리는 일에 가깝다.
우리는 ‘늦었다’라는 말에 주눅 드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SNS를 통해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들의 담론이 노출된다. 타인의 계절에 긴장도가 올라가고 세간의 기준을 따라 자신의 시간을 축소한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 주저앉아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을 실패란 이름으로 덧씌우기도 한다.
사람들이 선택 앞에서 조언을 구하는 이유다. 조언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다. 타인의 판단으로 확신을 탐색하며 선택을 유예한다. 실패를 피하려는 합리적 회피. 그러나 회피의 반복이야말로 완벽한 실패다.
완벽한 실패를 피하려면 도전을 젊음의 전유물로 한정하는 사고를 벗어야 한다. 시간을 핑계로 망설이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가능성을 잘라낸다. 과거의 선비들이 수십 번의 낙방에도 문을 두드렸던 이유. 시간을 거스르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계절을 견디는 용기의 기술이었다.
나는 문득 김재봉이 시험을 마치고 시험장을 나서는 모습을 상상했다. 굽은 등, 느린 걸음, 굳어버린 손. 그의 얼굴에 미소가 있었으리라. 90세를 살아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의 미소. 세상이 규정한 틀을 깨고 나온 한 인간의 진정한 미소 아니었을까.